송강호와 문소리. 이보다 더 신뢰 가는 만남이 또 있을까. 게다가 지난해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는 나란히 남.여주연상 수상자로 선정,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까지 이름을 올린 두 사람이라니.
어린이날인 5일 개봉하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감독)는 확실한 보증수표인 이 두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끌 영화다.
여기에 이 영화로 데뷔하는 임찬상 감독 식의 세상 바라보기는 최근 세간에 떠도는 '박정희 향수'와 대비를 이루며 흥행돌풍에 더욱 힘을 싣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미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과 그 이면을 '검프'라는 한 허구의 인물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비견되는 이 영화는 자연히 '넘버 3', '반칙왕', '공동경비구역JSA', '살인의 추억' 등 저마다의 독특한 색깔로 화제가 됐던 송강호에 관심이 간다.
흰 가운을 입고 나타난 그는 이번엔 어떤 색깔을 보여줄까.
◆고독한 아버지-송강호
이 영화는 한참 웃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는 묘한 느낌이 드는 영화다.
아마도 송강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송강호를 위한 영화인 셈이다.
영화배우 송강호(38). 그의 이름 석자는 머릿속에 여러 가지 잔상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넘버 3'의 '단순무식과격' 불사파 두목에서부터 '반칙왕'의 소심한 은행원, 그리고 '살인의 추억'에서의 우직한 형사까지….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렇게도 강렬한 그의 잔상들이 새로운 작품에서는 완전히 지워진다는 점이다.
'효자동 이발사'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의 이발사였지만 자신의 아들조차 지켜주지 못했던 평범하고 소심한 아버지, 그리고 1960, 70년대 그 굴곡의 모진 세상을 살아야했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송강호는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아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자 병을 고치기 위해 아들을 업고 얼음이 언 강을 건너는 그의 모습은 시대의 아픔을 어깨에 지고 묵묵히 갈 길을 걸어가는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절대 권력의 뒤편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 이런 소시민적인 모습은 '살인의 추억'에서 화면 전체를 장악했던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송강호가 왜 출연해야만 하는지를 가슴 절절이 느끼게 해 준다.
◆인고의 어머니-문소리
영화 속 문소리(29)는 그다지 비중 있게 처리되지는 않는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 등 그 동안의 필모그래피를 감안하면 출연도 대여섯 컷에 불과할 정도로 그녀는 홀대(?)를 받는다.
이 영화가 '아버지의 영화'로까지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녀의 출연 장면은 모두 중요 장면일 정도로 극의 사실성을 높이는데 없어서는 안 될 부분들이다.
경상도 산골 처녀 '민자'로 분한 문소리만의 힘이 아닐까.
힘없는 남편 옆에서 억척스럽게 한세상 버티어 내는 여자들, 무능한 남편과 부당한 세상에 대한 불만을 안으로 삭이면서 순종으로 일관했던 우리네 어머니들. 문소리는 바로 그런 인고의 어머니상을 열연해냈다.
청와대 이발사인 남편 덕에 잠시 호강을 누리지만, 자식이 어이없게 시국사범으로 몰려 공안당국에 끌려가는 바람에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혹독한 시절을 견디며 통과해 온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다홍색 한복을 입고 나선 촌스런 필부(匹婦)의 모습까지.
"3개월 촬영 내내 뽀글이 파마로 생활했는데 무척 편했어요". 20대 처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 말은 그녀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다.
역시 문소리는 문소리다.
◆새영화 '효자동 이발사'
최고 권력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조그마한 권력조차 누리지 못하는 대통령 이발사라는 설정은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아이디어다.
1968년 1.21사태, 72년 10월 유신, 79년 10.26과 12.12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한 인물의 시각을 통해 꼬집어보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여기에 자신의 어린 아들이 설사를 한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는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고, 급기야 고문 후유증으로 아들이 불구가 되지만 이를 지켜주지 못하는 우리네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소시민과 비정한 권력간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송강호, 문소리, 이재응 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현대사의 에피소드 조각을 조화롭게 꿴 임찬상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 덕분에 올 상반기 가장 기대되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결말 부분은 옥에 티다.
빛나는 대머리의 새 각하에게 "각하, 머리가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라며 자리를 사양하는 즉 권력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끝을 맺었으면 어땠을까. 불구가 된 아들이 다시 일어선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은 어찌 보면 당시 정권과 정면으로 승부하지 못한 감독의 상업적인 약점이 아닐까. 116분, 15세 이상 관람가.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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