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왕 중 가장 유력한 통일주자로 주목받던 견훤이 몰락했다.
견훤은 무진주(광주)와 완산주(전주)등 옛 백제 땅을 차지하고 후백제를 세워, 신라를 압박하고 고려의 왕건을 위협해 왔다.
그러나 왕위 이양을 두고 자식들간 갈등이 발생, 장남 신검에 의해 김제 금산사 미륵전에 유폐됐다.
유폐된 견훤을 어렵게 만났다.
고희를 앞둔 견훤의 모습은 20년 전 전장에서 만났을 때와 사뭇 달랐다.
장대한 기골과 기발한 상상력은 온데간데 없었다.
백발에 구부정한 허리였다.
간헐적으로 해소 기침을 쏟아냈다.
몸과 마음에 기력이 모두 빠져버린 듯 했다.
-왕께서는 반란 초기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민심이 갑자기 떠나버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라 경애왕을 살해한 것이 실수였습니다.
고려와 신라가 동맹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는데, 이 사건으로 신라인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경애왕을 살해함으로써 후삼국 통일의 천명을 받은 군자라는 인상 대신 잔인한 반란군이라는 인식을 주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후삼국 중 가장 강력한 군대와 넓은 영토가 있지 않습니다.
△허허, 그렇게 보십니까. 국운을 결정하는 것은 군대나 영토가 아니라 민심입니다.
빼앗긴 영토는 군대를 몰아 쉽게 되찾을 수 있지만, 잃어버린 민심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신라가 쇠락한 이유도 결국 민심을 잃었기 때문 아닙니까.
-승승장구하던 왕께서 말년에 고려와의 싸움에서 참패했는데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30년입니다.
30년 동안 궁예, 왕건, 신라와 번갈아 싸움을 했습니다.
세월에 따라 상대는 바뀌었지만 나는 그 바뀐 상대를 모두 감당해야 했습니다.
국력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많이 지쳤습니다.
-큰 아들 신검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2선으로 후퇴하셨다면 별 문제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신검은 국왕의 자질을 타고나지 못했습니다.
용모와 지략에서 넷째 아들 금강에 미치지 못했지요. 그래서 넷째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는데, 그만 신검이 난을 일으켜 이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각에서는 국왕의 개혁의지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의 한계이겠지요. 저는 신라 군인 출신입니다.
싫거나 좋거나 신라의 제도에 익숙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관부와 관등 조직도 신라의 제도를 답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대에 좀 못 미쳤던 모양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이곳을 탈출해 고려 왕건에게 몸을 의지할 작정입니다.
이미 자식에게 유폐된 몸입니다.
자식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무슨 꼴이 되겠습니까. 조두진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