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노동부장관을 지낸 바 있는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한때'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지에 두 번에 걸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중 하나는"우리 편은 누구인가(Who is us?)"이고 또 다른 하나는"우리의 적은 누구인가(Who is them?)"이다.
이 두 논문은 국가 간의 담장이 허물어지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해외에 본사나 공장을 옮겨가는 국내 기업과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 중 도대체 어느 쪽이 우리 편인지를 분석하였다.
이를테면 한국 편에서 볼 때 미국 텍사스에 소재한 삼성전자 공장이 우리 편인지, 아니면 한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의 소니가 우리 편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물론 라이시 교수는 전자(前者)의 기업이 배당이익의 본국송금을 통해 한국의 국민소득을 늘리는 역할을 하지만, 일자리와 부가가치의 창출 기능이 큰 후자(後者)가 우리 편에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라이시 교수가 다룬 학문적 화두(話頭)는 십수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국내총생산(GDP)의 파이를 키우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준다면 그 자본과 기업의 국적이 어디든 불문하고 모든 국가와 지역들이 외국자본의 유치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외환위기의 타개를 위해 국내 시장의 빗장을 열어 놓은 틈을 타 우리나라에도 외국 자본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고 있다.
국내 주가와 원화의 시세가 다 같이 싸진 것을 계기로 외국 투자가들이'바이코리아 붐'에 편승함에 따라 현재 외국인 지분율은 거래소 시가총액의 44%, 코스닥시장 시가총액의 18%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 증시의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은 아시아에서 1위, 세계에서도 4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그룹을 비롯하여 10대 대기업군의 외국인 보유비중이 50%를 넘어선 가운데, 대구.경북지역만 하더라도 35개 상장법인 중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20%를 넘는 기업으로는 대구은행과 포스코 등을 포함하여 모두 8개사에 이르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외국자본은 SK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 확보에 나서는 한편, 제일.외환.한미 등의 시중은행을 인수하거나 지분을 늘리는 동시에 실질적인 경영 참여를 모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목 좋은 곳의 부동산과 알짜배기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을 사들이고, 국내 채권시장을 비롯하여 외환시장과 파생금융상품시장의 거래를 주도하면서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처럼 외국자본의 국내 진출이 급증함에 따라 일각에서는 외국자본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종래의 통념을 깨고, 외자의 과도한 국내시장 침투에 따른 국부(國富)의 유출과 해외자본에의 종속성을 경계하면서 국내 우량기업의 보호와 토착자본의 육성을 위한 사모펀드의 조성을 추진하기도 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외국자본의 확대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또한 빛과 그림자를 다 함께 지니고 있다.
외국자본 진출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의 안정화에 기여한 점을 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회계제도, 공시 등의 분야에 선진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선진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밖에도 외형이나 시장점유율 경쟁에서 벗어나 수익과 현금흐름을 중시하고 고객과 시장 중심의 경영으로 바뀐 것도 긍정적 변화의 하나라 할 것이다.
외국자본의 확대로 인한 문제점도 없지는 않다.
단기적인 수익성과 성과에 집착함으로써 미래 성장기반 구축에 소극적이거나 국내외 기업 간에 역차별 현상을 낳을 수 있고, 외국인 투자가들의 반발 때문에 정부의 경제정책이 잘 먹혀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처럼 외풍을 많이 타는 소규모 개방경제일수록 외국자본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외부의 충격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금융산업에서 외국자본 비중이 높아질 때에는 단기성과 중심 경영으로 인해 중소기업금융과 서민금융이 위축됨으로써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도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자본의 폐해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국내 및 지역 기업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가 산업공동화가 우려되고 청년실업 문제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우리 경제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할 때 외국자본의 유치는 여전히 환영받아 마땅할 것이다.
다만 외국자본을 동북아중심국가와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올려놓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가 다 함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직접투자(FDI)의 유치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화언 대구은행 수석부행장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