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시대변화의 바로미터는 '여성들의 의식개혁과 삶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여성들을 둘러싼 의식과 생활문화의 변화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요 동력이 되고 있다.
구미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시장경제의 대부분을 여성들이 맡고 있으며 수출 일선에서도 여성기업인들이 당당히 한몫 하고 있다.
구미시 시미동 국가공단 3단지에 자리한 세계적 벨벳(Velvet) 회사인 (주)영도섬유의 류병선(柳炳先.55)사장. 류 사장에게는 구미지역 대표적 여성 CEO로 '한국 벨벳의 자존심' '벨벳신화를 창조한 난세가인(亂世佳人)' 등의 수식어들이 따라 붙는다.
류 사장의 하루 일과는 대구 칠성시장에서 장보기로 시작한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회사 식구들에게 먹일 점심을 손수 장보기해 밥을 지어주려는 마음에서다.
대부분 사원가족들이 고향과 부모곁을 떠나 와 있기에 류 사장의 작은 배려는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류 사장은 회사내 식당 주방에서 직접 장보기한 감자를 다듬고 양파를 손질하는 등 가정에서의 주부역할을 그대로 실천한다.
식사를 할 때도 직원들에게 '남기지 마라' '편식하지 마라'는 등 엄마의 잔소리를 고스란히 쏟아낸다.
음식을 남길 때는 매정할 정도로 약속된 벌금을 뺏어낸다.
이를 통해 사원가족들은 절약정신을 몸에 익힌다.
"나는 200여명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기에 스스로 대단하다는 자부심을 가진다"는 류 사장은 사원 가족들을 생각하면 게으름을 피울 겨를이 없다.
이런 마음이 '고객과 영도인이 하나의 가족공동체라는 신가족주의 열린 경영'을 가능케 한다.
류 사장이 본격 기업경영에 뛰어든 것은 지난 1997년. 40여년전 남편(영도섬유 회장)과 함께 털신발 공장을 운영하면서 제조업에 발을 들여 놓은 후론 줄곧 회사 살림살이를 해왔다.
그에게 이런 40년의 세월은 일할 수 있다는 즐거움과 함께 더불어 사는 신가족주의 경영마인드를 갖출 수 있게 했다.
그의 경영일선에는 IMF라는 거대한 공룡이 가로막았다.
95년에 확장한 제직공장이 경영악화를 최악으로 몰고 갔다.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 실시한 구조조정에서 공장과 직원들을 50%이상 줄였다.
그 후 오래도록 잠자리 이불 속에서 혼자 눈물을 삼켰다.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 해 온 자신의 살붙이(사원가족을 이렇게 불렀다)를 스스로 도려냈기 때문.
끝이 없을 것 같던 어두운 터널도 비로소 벗어나는 듯 하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회사경영을 맡아 구조조정과 함께 벽지.이불 등 그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벨벳의 새로운 시도 등으로 벨벳신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류 사장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진리를 믿는다"며 "가족들이 기쁨을 가지고 일하는 직장을 만드는게 꿈이다"고 했다.
그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직원들이다.
기업이윤을 직원가족들이 잘 살 수 있는 곳에 사용하는게 꿈이다.
자신이 여성이기에 벨벳이란 옷감에 대한 세심한 관심으로 벽지와 이불 등 다양한 분야 진출이 가능했다는 그는 여성들이 사회참여와 사회적 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덧붙인다.
구미지역 제조업분야 여성기업인은 대략 20여명 정도다.
아직은 직원이 50여명 내외인 중소업체들이다.
하지만 경영상태는 대부분 알짜배기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알뜰함으로 살림살이를 꾸리듯 회사를 경영해온 탓에 나름대로 튼튼한 내실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철재 파레트를 생산하는 (주)인당. 창업한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승승장구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서인숙(43.여)사장은 "영구 사용이 가능하고 품질이 우수한 철재 파레트를 생산해 전량 대기업에 납품, 수출을 통해 전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며 "저렴한 가격과 3배 이상의 수명으로 경제성이 우수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자사 제품을 소개한다.
이 회사는 창업 이후 1년 2개월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국내 동종종업계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성들의 힘을 보여주는 기업들이다.
국가공단에 들어선 삼성전자와 LG계열사 등의 생산라인에는 여성근로자들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대부분 주부.여성들로 메워져 대략 10만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들이 구미경제를 사실상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여성기업인들의 수도 해마다 증가해 지난 97년 92만명이던 것이 99년 98만명, 2001년 106만명, 2002년에는 111만명으로 해마다 5만명 이상이 늘고 있다.
게다가 기업뿐 아니라 지난해 공인중개사 합격의 46%가 여성이 차지하는 등 남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직업에 여성들이 과감하게 도전하고 있다.
구미여성기업인회 홍희자(e-조은포장 대표이사) 회원은 "여성으로서 기업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는데 노력해야 한다"며 "다양한 정보와 인맥을 위해 대학 특강에 나가는 등 기업경영과 별도로 왕성한 사회활동이 필요하다"고 여성의 사회참여의 어려움을 밝히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그들의 요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21세기가 여성들의 시대로 인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사회통념이 그들의 사회참여에 장애가 되고 있다.
이런 편견과 장애가 사라질때 여성들의 힘이 세계를 움직일 것으로 기대된다.
구미.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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