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우리가 싸우는 사이...

입력 2004-04-20 09:08:28

1. 총선민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7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열우당이 과반수 의석에서 2석을 초과한데다 명실공히 좌파정당인 민노당이 10석까지 차지한 국회구성이 짜였다.

범좌파(汎左派)가 주도하는 17대 국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보수성향의 정당은 소수당으로 밀려났다.

정당 지지도에 있어서도 범좌파 정당의 지지율이 51.3%에 달한다.

선거에 의한 정치권 혁명이라 할 만하다.

놀라운 일이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이제는 유럽선진국가와 같이 좌파정당과 우파정당이 교대하며 정부나 의회를 지배하는 것을 수용하는 단계에 와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2. 사생결단식 선거풍토

이번 선거의 주제음악은 노대통령 탄핵이었다.

탄핵반대 노래의 인기도가 하늘에 치솟았고, 선거후반에 가서야 겨우 거여견제야당 노래가 인기를 얻어 가다가 투표일을 맞았다.

탄핵 주제음악의 작곡가는 이론(異論)의 여지없이 노대통령 자신이다.

언론에서는 연초부터 노대통령이 17대 총선에 올인(all in, 모든 것을 걸고 도박함)하고 있다고 누차 우려성 지적을 했다.

그런데도 노대통령은 내놓고 "가능하다면 열린우리당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싶다"고 역설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소위 탄핵 정국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17대 선거 전후 과정을 보면 노대통령부터 각당 지도부 그리고 후보자들까지 총선에 올인한 모양새를 보였다.

그런데 정작 유권자인 국민들은 17대 총선에 사생결단하지 않았고, 아주 냉철하게 투표에 임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수준만도 못한 정치권이라고 해도 할말 없을 것이다.

선거는 수시로 있다.

지방선거, 대선, 총선, 재선거, 보궐선거 등등. 한번하고 끝낼 일이 아니므로 선거 한번 이겼다고 기고만장하고 졌다고 해서 국민총의를 비방해서는 더욱 안될 것이다.

우리의 유권자는 제헌 56년 만에 범좌파 정치세력에게 한번 해보라고 기회를 준 것뿐이고, 좌파세상이 된 것도 아니다.

만약 이 세력이 제대로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보수정치 세력에게 기회를 줄 것이 예상된다.

선거는 민주정치의 한 과정일 뿐 그것이 목표는 결코 아니다.

사생결단식 선거, 버리고 갈 유산이다.

3. 눈을 밖으로 돌려야 나라가 산다

참여정부 내내 한반도 반쪽 안에서 서로 헐뜯고 이전투구하는데 골몰하는 사이에 바깥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급변하고 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대륙 중국은 지금 아시아의 초강대국으로 운신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인구, 군사력은 비교대상이 아니고, 경제·기술력에서도 대부분 우리나라를 앞서갈 추세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비하여 자본력을 바탕으로 고도기술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정도보다 훨씬 급속도로 우리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까지 와 있다고 중국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그런 만큼 중국시장은 우리 경제의 사활을 쥐고 있다고 보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주변 국가들 가운데 대한민국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소국(强小國) 반열에 오르기를 진심으로 희구하는 나라가 있을까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런 다음 미국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자. 역사는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민족에게는 냉혹한 시련을 안겨 주었다.

20세기 초 우물안 개구리 싸움에 100년이 멍든 우리가 21세기 초에 다시 우물안에 잠겨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똑똑하고 지혜롭고 창의적인 국민이 나서서 정치권을 끌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나라든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정치를 가지는 법이다.

이경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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