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봄꽃이 피는 시기가 다른데 착안, 봄이 북상하는 속도를 계산했다.
제주도에서 개나리가 피면 보통 20일 뒤에 서울에서 개화한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는 위도로 4도차, 직선거리는 440km다.
440을 20으로 나누면, 하루에 22㎞씩 봄이 북상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면 1시간 동안에 봄이 올라오는 거리는 900m이고, 이것은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
나는 제주도에 개나리가 폈다는 소식을 접하고 서울에도 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서울에도 봄…. 만물이 소생하고, 대지가 생명을 잉태하고, 처녀가 바람나고 싶다는 봄이 아장아장 걸어왔다.
내가 사는 여의도는 섬 전체에 빙둘러 벚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주위 사람들은 벚꽃이 만개해 멀리 꽃놀이를 가지 않아도 되니까 참 좋겠다고 부러워한다.
물론 아름다운 꽃 속에 묻혀 사는 나는 행복하다.
그렇지만 여의도는 봄꽃이 피는 계절이면 각지에서 몰려온 상춘객 때문에 몸살이 난다.
슈퍼마켓이나 은행에 갈 때도 낯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하고, 퇴근 시간에는 거리마다 차들이 꼬여서 여의도에 진입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짜증스럽다.
아니 나는 더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고 왔기 때문에 여의도의 꽃축제가 시큰둥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골프장에 갔다.
요염하게 피어있는 기화요초들이 이슬에 세수를 하고 나만을 기다렸다.
연애편지를 전하듯, 벚나무는 바람결에 하늘하늘 꽃잎을 띄워 보냈고, 개나리와 철쭉은 진한 향기를 뿜어내며 나를 유혹했다.
목련은 기다리다가 지쳐버릴 즈음에 겨우 찾아온 님을 탓하듯 젖빛 꽃송이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낙화의 아쉬움을 누렇게 말라있는 잔디 사이로 쏘옥 돋은 새순이 달래주고 있었다.
그 숨막히는 봄의 향연을 작가인 내가 그럴듯하게 묘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놓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놓는다'고 한다.
자외선이 강해서 피부를 상하게 하는 봄볕은 며느리에게 주고, 얼굴이 곱게 그을리는 가을볕은 이쁜 딸에게 준다는 뜻이리라. '죽사발은 딸에게 설거지를 맡기고 찰밥을 담았던 사발은 며느리에게 씻게 한다'는 속담도 있다.
골프장은 매연과 먼지가 자외선을 걸러주는 도심하고는 다르다.
청량한 공기가 무자비하게 자외선을 통과시킨다.
나는 뽀얀 얼굴보다는 건강한 육체에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봄에는 찰밥 사발을 박박 문질러 놓고 따가운 빛이 난만히 내려쬐는 골프장으로 달려가는 며느리가 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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