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상담 보람 20년"

입력 2004-03-20 11:24:37

"남을 돕는다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인생의 산 교육장이죠".

24시간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리는 '생명의 전화 9191'. 세상의 모든 고민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밤 11시에 전화기 앞에 앉아 아침 7시까지 밤을 꼬박 새우며 20년째 전화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유귀년(58.여)씨.

"신문을 보고 우연히 상담원 교육을 받은 것이 인연이 돼 지금까지 하게 됐다"는 그는 "상담을 했던 사람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고맙다고 할때 느끼는 기쁨에 빠져 지금까지 자원 봉사를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듯 지난 20여년간 생명의 전화도 많이 바뀌었다.

"벨이 울리는 횟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세상살이가 팍팍하다는 것이겠죠". 실제로 지난 1년간 생명의 전화에 걸려온 상담 건수는 모두 1만466건. 하루 평균 30여건의 전화 상담을 한 셈이다.

상담 전화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부부간의 불화나 이혼, 자녀와의 갈등 등 가족간의 문제(2천649건)이며 이성에 대한 고민(1천742)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담 내용도 많이 변했다는 것이 유씨의 설명. "10여년 전만해도 가정주부들의 전화가 제일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남편들의 전화가 많아졌다"며 "대부분이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거나 가출 등에 대한 상담"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들어 부쩍 늘기 시작한 것은 자살 관련 상담 전화.

"경제난이나 취업난으로 우울증에 걸려 죽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유씨는 "두세 시간씩 통화를 하며 위로하지만 안타깝기 그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생명의 전화를 이용한 사람은 모두 83명이나 된다.

지난 2월 말에는 구미에서 자살하고 싶다며 전화를 걸어온 상담자의 생명을 경찰의 협조를 얻어 구하기도 했다는 것.

그러나 상담원에게도 한번씩 위기가 찾아온다.

경제적 도움을 호소해도 지원을 할 수 없고, 상담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항의하거나 심야 시간대 음란성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도 적지않기 때문이다.

유씨는 "가족문제부터 의료.법률 문제까지 모든 종류의 상담 전화가 걸려 오는 탓에 개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며 "자원봉사자 150여명이 번갈아 생명의 전화를 지키고 있는 만큼 언제든지 전화를 걸어주시면 된다"고 말했다.

(053-475-9191, 1588-9191)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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