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사적인 관점에서 0의 출현은 여러 가지 의미로 혁명적인 것이다.
0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헤아리는 것이다.
한 개, 두 개, 세 개를 헤아리는 것을 1, 2, 3으로 나타내는 것은 금방 수긍이 가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실체의 기호(0)로 표현하는 것은 쉬 수용하기 어려웠기에 0의 출현은 다른 수의 출현보다 늦었던 것이다.
0이 수로 인식되어 음수를 포함한 다른 수와 함께 사칙연산의 법칙에 기술된 것은 630년경 인도의 수학자 브라마굽타에 의해서 였다.
그러나 기수법에서 자리를 지키는 역할로서의 0은 그 역사가 훨씬 깊어 기원전 2000년 경 중국의 막대 수 표현에 이미 있었다.
값을 나타내거나 자리지킴이의 역할로서보다 '비존재의 표현'으로서의 영의 존재는 일찍이 유(儒), 불(佛), 선(仙)으로 대표되는 동양 사상(또는 종교)에서 그 핵심 개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원불변의 궁극의 진리를 불교에서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에서 볼 수 있듯이 공(空)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선교에서는 무(無)로 표현하고 있다.
0은 없는 것을 나타내지만 0이란 형상으로 실존한다.
불교, 선교에서의 공 또는 무는 실제로 '없지만 있는 것, 있지만 없는 것'으로서 0과 정확히 그 의미가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이 공과 무는 '없는 것'을 나타내지만 우주 만상의 아우르는 전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유교에서는 공이나 무를 태극으로 대신하지만 이는 만물의 기본 자리란 뜻으로 만상을 아우른다는 의미의 무와 통한다.
1이 신의 수라면 0은 우주만상을 포괄하는 어머니 같은 수이다.
그래서 1과 0이 함께 하면 세상 만상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수학에서 볼 수 있다.
실제로 모든 수는 0과 1을 써서 이진법으로 표현된다.
이진법은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츠가 발견한 수의 표현법으로서 임의의 자연수는 2의 거듭제곱의 합으로 유일하게 표현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다.
라이프니츠는 이진법을 발견한 후 "이것이야말로 신의 창조다.
1은 신을 0은 공(空)을 나타낸다.
1로써 모든 수를 나타낼 수 있듯이 신은 모든 것을 공에서 창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진법이란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이진법을 도입하여 수를 표현한 예는 고대 중국의 주역(周易)이다.
주역은 주나라 시대의 역이란 뜻으로 역경(易經)이라고도 하며 시경, 서경과 함께 삼경으로 꼽힌다.
주역에서는 1, 0을 각각 기호'―',''로 나타내고 이 기호를 효(爻)라고 한다.
여기서 원래'―',''는 각각 양과 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지만''이 '―'의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비게 만든 형상으로 공(空), 즉, 0의 의미를 선명하게 안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0부터 63까지의 64개의 정수를 각각 6개의 효를 써서 이진법으로 나타낸 것을 괘(卦)라고 하는데 주역은 괘와 효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라이프니츠는, 중국에 파견되어 있던 부베 신부가 이진법 표현이 주역의 괘 표현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에게 보낸 복희의 64괘의 배열도를 보고 "이 역의 그림은 오늘날 존재하는 과학에 관한 最古의 기념물입니다…. 0과 1로만 표현되는 이 산술은 수의 과학을 종래에 있었던 것 보다 더욱 완전한 영역에로 전진시키는데 불가사의한 효과가 있다고 나는 인정합니다"라고 답장에 적었다.
그렇다.
과연 그의 말대로 수천 년 전에 주역이란 수레로 등장하게 된 이진법이 오늘날 컴퓨터 존재의 가장 원초적인 이유와 방법이 되어 다시 눈부신 빛을 발하게 되었다.
황석근(경북대 수학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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