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문화 문화인-청송한지장 이자성씨

입력 2004-03-19 09:08:29

"천년을 간다는 청송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세월을 견딜 수 있는 좋은 국내산 닥나무에다 사람의 혼을 불어 넣어야 합니다".

7대째 청송군 파천면에서 천년을 간다는 '청송한지'를 만들고 있는 이자성(55.청송한지대표)씨는 봄이면 쉴틈이 없다.

군내 밭두렁에서 자생하는 닥나무를 거둬들여 껍질을 벗기고 삶아서 한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봄이 깊어지기 전에 밀려드는 주문량을 채워야해 늦겨울부터 초봄이 한철.

"날씨가 따뜻해지면 풀이 상해서 냄새가 나고 껍질이 두꺼우면 종이가 퍼지기 때문에 1년생의 보송보송한 국산 닥나무만 사용합니다".

한지는 닥나무 선택이 품질을 좌우한다.

경북도 무형문화재 23호인 부친 이상룡(85)씨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온 말이다.

200년 넘게 이어온 청송한지의 명맥을 이어가는 이씨의 한지공장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02년 4월쯤 전기누전으로 큰 불이 나 공장이 잿더미가 됐다.

그 뒤 벽돌을 한장한장 쌓아올리고 비닐을 덮어 비만 피한 채 지내오다 얼마전에야 비닐을 걷어내고 지붕을 새로 얹었다.

빠듯한 살림이어서 남의 일손을 빌리기가 어려워 부부가 한지틀 앞에 매여산다.

부인 김화순(56)씨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꼬박 일해 만들어내는 한지는 800여장 정도.

한지를 만드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다.

먼저 닥마무를 골라 껍질을 벗긴 후 솥에 넣고 6시간동안 삶는다.

이것을 말린 다음 가성소다를 첨가해 새로 삶고 표백처리를 한다.

분쇄기로 갈고 깨끗이 씻어내면 비로소 기본 작업은 끝난다.

이것을 물에 섞으면 풀처럼 흐물흐물해지는데 직통(한지틀)을 넣어 떠내면 한지가 만들어진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는데 걸리는 시간만도 꼬박 이틀. 분쇄기로 가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사람의 손길이 가야하는 것도 어려움이다.

다만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아들(이규칠.26.고려대 무역학과 재학)이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것이 위안이다.

서울물을 먹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기어코 졸업후 이 길을 가겠다고 하는 자식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한지 제작 과정을 지켜본 서예가 서산 권시환(55)씨는 "중국산 닥나무를 사용한 다른 한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고 말했다.

국제소법예술연합 대구.경북지부장이기도 한 권씨는 지난 2001년 10월 '청송한지 돕기 서예전'을 청송읍사무소에서 열기도 했다.

문의=054)872-2489.

청송.김경돈기자 kd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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