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너무 시끄럽다.
11일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사과를 거부하고 노 대통령의 친형에게 인사청탁과 함께 돈을 건넨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기자회견 직후 한강에 투신 자살했다.
여의도 한 편에선 노사모 회원이 분신했다.
12일 새벽엔 야당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 탄핵안 표결의 실력저지에 나선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2일 중 어떻게든 탄핵안을 가결시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할 모양이다.
모두 탄핵정국의 산물이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발의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가 없다.
국민들은 조마조마하는 가슴으로 대통령과 국회를 지켜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측근비리와 친인척 비리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탄핵의 단초가 됐던 자신의 열린우리당 지지발언과 관련해선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표명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재신임을 17대 총선과 연계하겠다고 밝혀 '기름 부은 격'이 됐다.
측근 및 친인척 비리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되레 변명으로 치부될 정도였다.
결국 야당에게 공격의 빌미만 제공했다.
탄핵에 대해 부정적이던 일부 야당의원들까지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박근혜 의원은 11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사과하면 풀리는 정국인데 노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감정적 대응을 하고 있다.
국가관과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왜 이렇게 사태를 자꾸 꼬이게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인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굴복을 강요하는 정치가 반복돼선 안된다"고도 말했다.
다수당의 횡포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민들은 노 대통령에게 굴복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야당도 탄핵을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더더욱 곤란하다.
노 대통령을 두고 '정쟁을 즐기고 그것이 취미인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에 꼬리표만 하나 더 달게 한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노 대통령은 11일 오전 기자회견 후 한국노총 지도부와의 오찬 자리에서 "어떠한 화해도 명판결보다 나은 만큼 합의를 토대로 당사자가 노력하자"며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합의란 이해와 타협이 전제가 돼야 한다.
노 대통령 본인이 합의를 내세우면서 도리어 국정혼란과 국론분열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
국민여론은 탄핵에는 반대하면서도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바라는 것으로 이미 해답이 나와 있다.
정치권의 충돌과 파국을 원치 않은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 여망이 이같은데도 대통령부터 이를 애써 외면했고 야당은 '얼씨구나' 하고 탄핵결의안 통과를 자신하며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趙) 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염파(廉頗)장군은 한때 명신 인상여(藺相如)의 출세를 시기해 불화하였으나 끝까지 나라를 위하여 참는 인상여의 넓은 도량에 감격한 염파가 깨끗이 사과함으로써 다시 친한 사이가 돼 죽음을 함께 해도 변하지 않는 친교를 맺는다.
문경지교(刎頸之交)의 고사가 여기서 비롯됐다.
나라의 위기를 생각해 염파의 모멸을 감수한 인상여의 크나큰 국량(局量)이 노 대통령에게도 필요한 때다.
대통령은 나라의 가장 큰 어른이다.
어른은 때로 어린이의 치졸함도 이해해줄 줄 알아야 한다.
'국민과 야당이 어른 대우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대통령부터 어른 노릇을 하라는 말이냐'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대통령이 앞장서 자존심을 죽이고 매사를 의연하게 대처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중앙선관위가 숙고끝에 내린 결정을 대통령이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이런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공자(孔子)가 제자 자장(子張)이 길을 떠나며 몸을 닦는 요체를 가르쳐 주길 청하자 "천자가 일을 참으면 온 국가에 해로움이 없을 것이고, 제후가 참으면 자기가 다스리는 땅이 커질 것이고, 관리가 참으면 제 지위가 올라갈 것이다.
형제간에 참으면 그 집이 부귀를 누릴 것이고 부부가 서로 참으면 일생을 함께 해로할 것이고, 친구끼리 서로 참으면 상대방의 명예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혼자서 참으면 화가 없을 것"이라고 설파했다.
경제가 어렵고 세상이 어수선한 이 때에 큰 어른의 너그러움과 절제의 미덕이 무엇보다 아쉽다.
홍석봉(정치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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