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 참형장 가상르포

입력 2004-03-12 09:24:18

이차돈의 참형이 집행될 들판엔 아침부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먼길을 달려온 사람도 있었다.

불교 신도들은 우울한 얼굴로 형집행을 기다렸다.

불교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귀족들은 승리감에 도취된 얼굴이었다.

이차돈이 사라짐으로써 이 땅에서 불교의 싹을 잘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배어 있었다.

귀족들은 창검으로 무장한 근위 무사들에 둘러싸인 채 형집행을 기다렸다.

두 팔을 뒤로 묶인 이차돈이 끌려나왔다.

매질을 당했는지 옷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이차돈의 얼굴은 고요했다.

칼을 찬 형리 두 사람이 이차돈을 거칠게 밀치며 형장 가운데로 데려왔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이차돈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할 말이 있소이다". 형장 가운데 앉은 이차돈이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 이렇게 죽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법(佛法)을 위해 죽는 것이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부처가 과연 신통력이 있는지, 이 세상을 구할 능력이 있는지 궁금할 것이오. 잘 보시오. 내가 죽을 때 반드시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이오".

형리의 크고 육중한 칼이 이차돈의 목을 쳤다.

군중들 사이에서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기적이 일어났다.

잘린 이차돈의 목에서 흰 피가 솟아난 것이다.

해를 마주 보고 서서 참형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람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불교신자들은 합장한 채 무릎을 꿇고 부처를 불렀다.

근위 무사들에게 둘러싸인 귀족들도 제 눈을 의심했다.

무시무시한 광경에 덜덜 떠는 사람도 있었다.

해를 등지고 서서 참형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목이 잘린 이차돈이 꼬꾸라지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부처님을 부르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흰 피가 솟아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는 사람과, 햇빛에 반사돼 흰 피로 보였을 뿐이라는 사람이 맞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차돈의 목에서 흰 피가 쏟아졌다고 증언했다.

붉은 피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흰 피를 보았다는 목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급기야 붉은 피를 보았던 사람들도 흰 피를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이차돈의 사형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이 놀랍다는 것이었다.

불교는 경이롭고 신통한 종교라는 소문이 고을에서 고을로 퍼져나갔다.

불교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는 기대로 형장에 나왔던 귀족들이 혀를 차며 돌아섰다.

한편 이차돈의 참형은 정치적 이해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는 불교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법흥왕 편에 섰다.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경림(天鏡林,신라의 수도에 있던 일곱개의 신성지 중 하나)의 나무를 베어 절을 창건하려 했다.

그러나 귀족들의 반발이 거셌다.

귀족들은 회의를 열고 법흥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자는 데까지 의견을 모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법흥왕은 절 건립을 추진한 이차돈을 처형함으로써 귀족들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했다.

이차돈의 참형을 지켜보았던 한 원로 신하는 "국왕이 이차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며 "오늘 이 땅에서 이차돈이 죽었지만, 내일 이 땅에는 불교가 번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차돈의 참형당시 목에서 흰 피가 솟았다는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면서도 "흰 피의 사실여부를 떠나 이차돈의 죽음은 불교의 신성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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