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五十笑百'

입력 2004-03-11 11:51:10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에 처한 이쯤에서 1년의 족적을 돌아보니 참 파란만장이다.

노 대통령은 이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 오늘 또 얼마나 절묘한 수(手)를 내놓으실지 모르나, 야당이고 청와대고 서민들이고 모두들 골병든 것같은 이 상황에서 내놔야 할 수는 묘수가 아니라 바로 상생(相生)의 보통수다.

도대체 개혁은 되는것인가, 지금 얼마나 온 것인가, 얼마나 더 시끄러워야 하는가, 아니 '개혁'의 정의.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경제는 살것인가 죽을 것인가?-시장(市場)의 백성들은 이처럼 쉽고 간명한 해답을 원하건만 정치는, 개혁은 난마처럼 얽혀 대답이 쉽지않다.

개혁세력들이 지향하는 바 변화의 목표는 분명 옳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1년이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 같았던 지금, 역시 개혁은 '동반개혁'이지 상대를 죽이고 가는 '올인'의 승부게임은 아니구나, 15라운드의 장기전이지 3라운드짜리는 아니구나 하는 소회에 젖는다.

너무 급해서 체해버린 상태가 지금의 개혁상황 같아 보이지 않는가. 백성들이 이미 성장이란 과일의 단맛을 알아버린 지금, '빈털터리'속에서의 개혁은 쉽지가 않다.

역풍을 맞으면 되치기 당하기 십상이다.

그 '역풍'이 야당이 아닌 국민이라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개혁이 밥먹여주나?"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반전(反轉)의 이벤트는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개혁팀들은 "급하게 다그치지 않고서 무슨 개혁 할 수 있나"고 튈지모르나 그들은 두가지를 간과한 것 같다.

'바늘 허리꿰어 쓰려다간 바느질이 안된다'는 사실 하나와 무엇보다도 그들 내부 구성원들이 안고있는 '자기부패'에 무지(無知)내지는 관대했다는 점이다.

개혁논쟁과 불법대선자금을 시발로 극한으로 치달아온 여야 대립상을 보면 그렇다.

개혁파들은 종국엔 당권경쟁으로 탈색된 분당이란 최악의 사태를 빚었고, 한나라당을 '차떼기 정당'으로 낙인찍는데는 성공했으나 내부적 부패와 노 대통령의 '입술'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지금 호텔같은 당사를 버리고 쥐.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영등포구 문래동의 농협 폐공판장으로 옮겨가야 할 지경이 돼버렸다.

말이 좋아 '몽골기병들의 풍찬노숙'이지 오죽하면 이씨 성(姓) 가진 여성상임위원이 "소독에 신경 써달라"고 신신당부 했을까.

궁구물박(窮寇勿迫)의 교훈을 떠올린다.

'쫓기는 적을 궁지로 몰지않는다.

궁한 놈이 죽기로 달려들면 쫓는자가 다치게 된다'- 조선시대, 노략질을 일삼은 대마도 왜구를 다스린 책략의 하나가 바로 이 '궁구물박'이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slow slow quick quick) 해야하는 춤스텝에서 '퀵 퀵'만 하자고 한 게 개혁세력이요, 노 대통령도 그뒤에서 현란한 말솜씨, 야당 약올리는 표현으로 독전(督戰)만 거듭했으니 그 과정에서 형성된 여론의 공감대가 "노무현은 불안해"였고, 결국엔 궁구(탄핵)에 물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이 시점에서 탄핵은 옳지 않다.

동시에 바보처럼 왜 거기에 물렸나 하는데서 노 캠프의 전략적 실패가 지적돼야 하는 것이다.

또하나, 총선 올인한다고 여권이 전쟁터에 내보낸 용사들의 상당수가 이미 부패했거나 '노무현 개혁의 뜻'을 전혀 학습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사실들은 개혁세력의 '개혁 독점'을 부끄럽게 만든다.

노 대통령의 동업자는 소위 구악(舊惡) 뺨치는 '향토장학생'이었다.

땡전한푼 안 먹었다던 최도술.이광재.여택수로 이어지는 청와대 386들의 면면은 이제 '자기 부패'의 거울로 등장해 있다.

'바꿔 열풍'속에 대충대충 걸러서 내놓은 공천의 면면을 보면 여야 할것없이 거름지고 장에 따라간 경우도 한둘이 아니다.

대구지역을 보라. 한나라 후보들은 걸핏하면 공천불복이요, 여당의 한 신인은 사무실 이마에 '공명선거만이 나라를 살린다'고 써붙여 놓고도 돈장난을 치다 탈을 냈다.

준비운동도 안 시킨채 개혁열차를 타다보니 뒤죽박죽이 돼버린 현실이다.

한나라당은 수성(守城), 열린우리당은 대구 교두보의 확보가 절체절명인 상황에서 낙하산 공천과 숫자채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여기서 다시 오십소백(五十笑百)의 교훈이 제기된다.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고자 왕이 적의 침입을 외쳤다.

신하들은 백보(百步)도 달아나고 오십보도 달아났다.

다시 왕이 외치기를 "그건 거짓보고다 돌아오라". 이때 오십보를 달아난 신하가 백보자(百步者)를 비웃으며 외쳤다.

"비겁한 놈!-". 이 '오십소백'은 지금 개혁으로 밥말아 먹을만큼 신선도가 떨어져 버린 그 '개혁의 독점'에 던지는 보충설명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개혁은 같이, 함께 가는 것이다.

그래야 성공확률도 높다.

여건 야건, 흑백논리나 '비교우위론'은 이제 그만 써먹어야 한다.

노 대통령도 '10분의1'의 마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들은 대통령으로부터는 '재신임'의 협박(?)을 받은데 이어 야당으로부터는 '탄핵'의 협박을 받고 있다.

'노무현'을 마구 깔봤던 분위기, 야당을 부패집단이라고 매도해온 독존의 분위기가 지난 1년 한국정치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왔다면 이젠 '오십소백', '궁구물박'의 전략이 절실하다고 믿는다.

남녀간의 성별(性別)처럼 이견(異見)을, 태생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상생의 리더십이다.

오늘 밝힐 '노무현의 생각'은 그 잣대가 될 터이다.

강건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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