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 좀도둑 골치

입력 2004-03-09 13:57:37

'신고하자니 욕먹겠고, 안 잡을 수도 없고…'.

백화점과 할인매장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좀도둑때문에 속을 태우고 있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후 도난 사고가 잇따르지만 도둑을 잡아 신고하면 '생계형 절도범'이란 동정어린 시선에 떠밀려 자칫 '인색한 기업'이란 뭇매를 맞고서 기업 이미지 실추만 불러오기 일쑤이기 때문. 그렇다고 해서 자체 보안을 강화하면 매장 분위기가 딱딱해져 매출 감소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실제로 각 유통업체는 연일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8일 오전 10시쯤 대구 북구 산격동 ㅋ대형할인매장에서 여성용 의류와 화장품, 식료품 등 30만원 상당을 훔쳐 나오던 주부 김모(45)씨가 CCTV에 발견돼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1일에는 ㄷ백화점에서 외제 의류와 속옷을 훔친 40대와 20대 주부 2명이 붙잡혔다.

또 지난달 29일에는 ㅁ유통센터에서 옷을 훔친 여고생이 붙잡히는 등 각 매장마다 절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찰 신고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소수라는 것이 유통 관계자들의 설명.

대구의 한 할인점 관계자는 "얼마전에 게임용 CD를 훔친 회사원을 잡아 경찰에 신고했으나 범인이 '돈이 없어 아들에게 주기위해 훔쳤다'는 말에 주위에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져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 한 백화점의 안전실장은 "고가의 옷을 훔친 주부를 경찰에 신고했다가 남편의 호소로 합의해 줬는데 이 일이 언론에 보도된 뒤 곤욕을 치렀다"며 "현장에서 좀도둑을 잡아도 드러내놓고 조사하거나 경찰에 알리기보다는 도난품 매장 주인의 확인 등을 통해 조용히 해결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확실한 현장범을 잡아도 절도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대구의 한 업체가 현장범에 대한 몸수색에 나섰다가 시민단체 등에서 '인권 유린'이란 거센 비난을 받은 이후 업체마다 몸수색이나 소지품 검사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이에 따라 유통업체마다 머리를 짜내 매장내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지하며 사전 단속에 나서고 있다.

매장 내.외부 보안을 맡은 인력의 호칭을 '00도우미'로 바꾸고 여성고객이 많은 점을 감안해 여자 간부사원을 사복 배치, '보이지 않는 경계'를 펴거나 폐쇄회로 TV를 확대 설치하는 등 무인경비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

원종곤 이마트 칠성점 업무팀장은 "유통업체 특성상 고객 이미지 향상이 중요하므로 눈에 보이는 보안인력 강화가 어렵고, 도난예방 시스템 구축 등 장비 향상에 힘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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