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조명-이공계 기피현상

입력 2004-02-27 09:22:08

IMF 체제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회오리를 겪은 국민들에게는 안정된 직장과 수입 보장이 사회 진출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의대나 치대, 한의대 등 이른바 의약계열 학과에 상위권 대입 수험생들이 몰리는 반면 이공계열 진학을 외면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여기서 나타난 용어가 이공계 기피 현상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한다면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용어는 잘못된 것이다.

대학생 가운데 이공계 비율은 2002년 26.9%에서 2003년 30.3%, 2004년 31.5%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는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문제는 질이다.

양적 팽창에 비해 이공계 학생들의 질은 떨어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상위권 고교생들이 의약계열을 선호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뒤따르는 결과다.

그럼에도 고교 시험 성적을 꼭히 과학기술 종사자로서의 자격 요건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고 과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등 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중.장기적 해결책이 모색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안정된 수입과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업을 평균 연봉 순으로 따질 경우 의약계열은 10개나 상위 20위 안에 포함됐지만 이를 제외한 이공계열은 상위 연봉 100위 안에 드는 게 26개에 불과했다.

사회 지도층에 과학기술인이 중용되는 시스템도 구축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CEO 가운데 45%가 이공계 출신이고 일본은 46%, 유럽은 49%에 이른다.

중국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모두 이공계 출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원 273명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5% 미만에 그치고 있다.

사회적인 이해를 넓히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주도돼야 할 일이다.

과학은 기술이나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를 도와주는 학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사회로 급격히 진입하면서 응용기술만 강조돼 사회 구조 전체를 떠받치는 토대로서의 과학은 자리잡지 못했다.

이제는 과학이 문학이나 예술 못지않게 사회 문화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도록 바뀌어야 한다.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과학기술을 쉽게 접하고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 부문의 변화도 이같은 인식의 토대 위에서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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