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나팔이 길게 울었다.
족장의 상여가 입산함을 하늘에 고하는 나팔소리였다.
장례 행렬은 들판을 건너와 산을 기어올랐다.
상여를 둘러싼 근위 무사들의 청동검이 햇빛을 받아 빛났다.
시녀와 몸종들이 상여를 붙잡고 울었다.
울음소리는 물결처럼 일렁이며 상여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순장자들은 울지 않았다.
그들은 족장의 상여보다 하루 먼저 산에 도착해 각자의 구덩이 앞에 꿇어앉은 채 밤을 지샜다.
청동창과 횃불을 든 병졸들이 그들을 지켰다.
순장자들 중에는 자원한 자도 있었고 징발된 자들도 있었다.
병졸을 따라 제발로 걸어 온 자도 있었고 두 팔을 묶인 채 끌려온 자도 있었다.
족장의 유모와 늙은 족장의 몸뚱이를 주무르던 젊은 시녀들은 당연히 순장에 포함됐다
순장자들은 다양했다.
시녀, 농부, 노예가 있었다.
무사와 늙은 부부와 아이 딸린 젊은 부부, 처녀와 과부도 있었다.
이번에 족장과 함께 묻힐 사람은 모두 62명이었다.
족장은 죽기 전 '부족이 큰싸움을 앞두고 있으니 무리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순장자들의 구덩이는 족장의 관이 들어앉을 석실 주변에 부챗살 모양으로 배치됐다.
순장자들은 족장보다 먼저 구덩이 속에 누웠다.
늙은 부부가 머리와 다리를 거꾸로 포개고 한 구덩이 속에 누웠고, 젊은 부부는 젖먹이를 가운데 두고 모로 누웠다.
아낙은 젖꼭지를 물려 우는 아이의 입을 막았다.
구덩이 속에 누운 젊은 여자가 손을 뻗었으나 아무도 그 손을 보지 못했다.
젖먹이가 울음을 터뜨렸으나 아무도 듣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자의 손과 아이의 울음소리를 애써 외면했다.
엄숙한 상중이었다.
족장의 머리맡에는 청동방울과 청동검 청동거울 등이 놓였다.
족장의 관이 석실로 내려가자 군사들이 석실의 뚜껑을 덮었다.
순장자들의 구덩이마다 배치된 병졸들이 일제히 돌 뚜껑을 들어 구덩이를 덮었다.
구덩이를 덮을 때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백성들은 그 적막을 족장의 덕이라 칭송했다.
지난 번 순장 때는 구덩이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자가 있었지만 군사들이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려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울음을 터뜨리는 처녀를 뒤에서 도끼로 내려쳐 던졌다.
그러나 그 일을 입밖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족장과 귀족은 자꾸자꾸 죽었고 큰 무덤은 능선을 따라 산봉우리처럼 뻗어나갔다.
한편 대규모 순장과 관련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사람을 생매장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데다가 한창 일할 나이의 사람들을 생매장하거나 죽여서 묻음으로써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족장과 귀족들의 순장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죽어서도 귀한 대접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역사적 사건 당시 오늘날과 같은 신문이 있었다면 어떤 기사가 나왔을 것인가 생각해보는 지면입니다.
비슷한 형태의 책자나 사례들이 있지만 학교 과제물에 활용할 수 있는 실감나는 역사신문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교사,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2월 20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국립 중앙도서관.국가지식정보통합검색 시스템.한국역사연구회.역사신문.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청소년을 위한 한국사.현의노래(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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