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구걸·희롱...공원 노숙자 차지

입력 2004-02-26 13:54:25

23일 오후 5시 동구 신천동 지하철 동대구역 앞 시민공원.

노숙자 6, 7명이 벤치에 버너와 코펠을 올려놓고 목소리를 높이며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고개가 돌아가지만 이들은 전혀 아랑곳없이 '만찬'을 즐겼다.

"공원에 올 때마다 짜증이 나지만 애써 못본 척합니다".

인근에 직장이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김모(30.여)씨는 "술에 취해 돈을 달라고 하거나 술을 같이 마시자며 다가오는 노숙자들까지 있어 요즘은 공원 찾기가 겁이 날 정도"라며 "이곳이 과연 시민을 위한 공원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봄이 다가오면서 시민공원 곳곳이 노숙자들로 인해 '기피 시설'이 되고 있다.

아예 숙소(?)를 마련하고 식사까지 해결하면서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행패를 부리는 행위가 잦아지고 있지만 대구시나 경찰 등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

◈화장실은 목욕탕

동대구역 앞 시민공원의 화단 한 구석에는 노숙자들의 숙소용 텐트가 설치돼 있다.

나무로 둘러싸여 눈에 잘 띄지 않는 텐트에는 10여명의 노숙자들이 기거하면서 공원을 마당으로, 인근 동대구역사 화장실은 목욕탕 삼아 살아가고 있는 것.

시내 중심가의 국채보상기념공원, 경상감영공원이나 두류공원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두류공원관리사무소 단속반의 전재기(34)씨는 "십여명 남짓한 노숙자들이 두류공원에서 살고 있다"며 "겨울철이라 수가 많이 줄었지만 앞으로 날씨가 풀리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곳 노숙자들의 숙소는 난방이 되는 화장실. 이 때문에 두류공원 화장실의 청소부 아주머니들은 매일 노숙자들을 깨우고 폐박스와 헌 이불가지들을 치우는 것이 아침 일과가 됐다.

공원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여름이면 화장실에서 옷을 벗고 샤워까지 하는 노숙자들이 있어 시민들이 깜짝 놀라는 일도 잦다"며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노숙자들을 마냥 쫓아낼 수도 없어 난감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원 주변을 떠돌며 사는 노숙자는 대구에서 현재 줄잡아 100여명을 넘어선다.

◈수용시설엔 빈자리

문제는 대구시가 예산을 지원하는 5개 노숙자 쉼터(수용 가능인원 250명)에 200여명이 있어 여유 공간이 남아있는데도 이들이 쉼터 생활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

노숙자 관련 사회복지기관의 한 관계자는 "IMF 이후 노숙자에 대해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이 강하고 인권 문제만 부각되다보니 오히려 이들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도외시되는 부분이 많다"며 "시나 경찰 등이 공익적 차원의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사진 : 23일 오후 노숙자들이 지하철 동대구역 광장에서 취사를 하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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