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인터넷의 두 얼굴

입력 2004-02-26 08:59:53

'왕따 동영상' 파문에 따른 교장선생님의 자살, 특수강도 혐의 수배중에 '강도얼짱' 신드롬을 낳은 20대 여성의 검거 소식은 새삼 우리의 인터넷 문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년을 2년 앞두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교장선생님은 동영상 파문 이후 네티즌들의 항의와 교육청의 조사 등으로 거의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했다는 후문이다.

또 당사자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 강도얼짱 신드롬은 이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사실 인류 역사에서 새 매체가 출현할 때마다 동전의 양면처럼 그 매체로 인한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했다.

15세기 획기적인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 경우 처음엔 면죄부(免罪符)를 마구 찍어내 돈을 많이 벌었다.

하지만 그후에 그는 '구텐베르크 성서'로 불리는 성서를 출판했고, 그것은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을 촉진하는 밑거름이 됐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이용하는 인구가 3천만명에 이른다는 인터넷도 아직까지 순.역기능이 병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최근 펴낸 산문집 '신들메를 고쳐매며'에서 인터넷을 '새로운 광장(廣場)'으로 파악하고, 비판적 견해를 피력했다.

"순정성(純正性)을 잃은 네거티브 현상과 결합된 인터넷이 무시하지 못할 정치적 파괴력으로 다가오자 사람들은 비로소 그게 한낱 통신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광장임을 알아보았다" "(인터넷의) 놀라운 전파 속도 또는 공간성도 그 광장을 선점한 자들에게 역기능만 악용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 이씨는 "지금까지의 우리 인터넷 광장을 관찰.분석한 최근의 논의는 불행하게도 디지털 포퓰리즘에로의 전락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고 했다.

사회문제가 된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에 인터넷까지 악용된다는 것은 인터넷 역기능의 극단을 보는 것 같다.

교내에서 왕따를 당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더라도 실시간으로 컴퓨터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곧바로 '왕따 경력'을 알려 피해 학생이 숨을 곳을 없애버린다는 얘기는 할말조차 잊게 만든다.

이처럼 곳곳에서 인터넷의 역기능이 표출되고 있지만 인터넷이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순기능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시작된 친일인명사전 편찬 기금 모금에는 3만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참여, 한 달여만에 7억원이 넘는 성금이 모였다.

'대한민국 사이버 신인류'를 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실세계의 틀로 사이버 공간을 들여다보려 하지 말고, '사이버 신인류'가 지닌 창의력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인터넷에 '희망'을 걸었다.

구텐베르크가 그랬듯이 새로운 광장으로 등장한 인터넷의 역기능을 없애나가고, 순기능을 살려나가는 '열쇠'는 결국 인터넷 이용자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

문화부 차장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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