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지역경제의 블랙홀, 중국경제

입력 2004-02-25 11:41:19

오늘날 세계화와 정보화의 물결은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질서와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살리기 3대 법률'의 제정을 계기로 지방화의 흐름이 빠른 물살을 타고 있다.

상품, 돈, 사람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국가 대신에 세계 곳곳의 도시와 지역들이 서로 직접 교류하는 '국경 없는 세계'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와 지방화는 언뜻 보아 서로 모순되거나 상충되는 것 같지만 실은 세계가 '지구촌'이라는 한 울타리 안으로 편입되고, 경제적으로는 하나의 경쟁 무대로 통합됨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지역 경제에는 위협일가, 아니면 기회일까.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지방 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낙후되고 피폐한 지역경제에는 분명히 기회이고 축복임에는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지방화의 흐름은 중앙과 수도권에 몰려 있는 권한과 돈과 인재를 지역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품과 돈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오가고, 기업들도 최적의 투자 환경을 찾아 세계 어느 곳으로도 옮겨가는 오늘의 세계경제 질서 속에서, 지역의 자원을 누출시키고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원심력 또한 만만치 않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인 중국 경제의 부상은 세계경제 질서와 판도에 거대한 용틀임을 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외의존도가 높고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한국 경제와 대구경북 지역 경제 또한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미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대구경북지역의 최대 교역국으로 떠올랐으며, 지난해 말까지 총 926건에 달하는 대구경북지역 기업들의 해외투자 실적 중에서 중국은 거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지 않은 소액의 개인 투자까지 포함하면 지역 기업의 대 중국 투자 건수는 아마도 수천 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 진출 지역도 당초 산둥성 등의 연안 지역과 톈진이나 칭다오 등 내륙으로 점차 확산되는 추세이다.

중국 경제는 앞으로도 7~8%의 고도성장 가도를 달리고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내시장을 추가로 개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한발 앞선 기술력과 국제 교역상의 비교우위를 지닌 지역 상품의 수출에 활로를 터 줌으로써 단기적으로는 지역경제에 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섬유를 비롯한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은 물론이고 자동차부품, 기계, 전자, 철강 등 중화학제품마저 해외 및 중국 내수시장에서 중국 상품에 밀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지역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중국으로 이전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중국이 대구경북지역의 경제적 자원과 성장잠재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여 지역 경제의 공동화 현상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경제가 중국 경제의 영향권에 종속되거나 '근린궁핍화'의 희생물이 될 수는 없다.

지역경제를 감싸고 도는 난기류를 걷어내고 풍요롭고 경쟁력 있는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처방은 어렵고도 시간이 걸리지만 단순하다.

대구와 경북이 서로가 지닌 강점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각 지역이 지닌 핵심 역량을 최대한 살려나가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비록 범용상품은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신제품 개발과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해외 선진자본의 유치를 통해 지역 전략산업에서만은 중국과의 격차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기러기떼 발전모형(flying geese model)'에서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종 기업지원 서비스를 육성하고, 지역금융 활성화와 물류.유통 육성 등을 통해 경제적 인프라를 강화함으로써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지방이전 공공기관을 비롯하여 유망한 대기업과 외국기업의 지역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지방분권 시대에 지역의 자생적인 발전을 이끌 지역혁신체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운영토록 해야 할 것이다.

임상녕(대구은행 기획조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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