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이번에는 그게 아닌가보다/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나는 풀이 죽는다". 8순의 원로 김춘수 시인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시 '강우(降雨)'의 한 부분이다.
이사할 때 요강만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극진한 내조에 힘입어 가정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던 그로서는 현모양처가 없어 풀이 죽는 건 당연할는지 모른다.
'아내가 없는 남자는 지붕 없는 집'이란 영국 속담도 있지만, 가정에서는 하숙생 같던 그에게는 아내가 지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세태가 크게 달라져버린 느낌이다. 현모양처를 성공한 여성으로 여기거나 남성들이 그런 여성을 원하던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일과 결혼 중 하나를 선택했으며, 대체로 신사임당(申師任堂) 같은 아내상을 떠받드는 경향이었다. 그러나 이젠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식 결혼생활을 선호하는 추세다.
▲요즘 20, 30대 직장인들은 단연 '슈퍼우먼형'을 이상적인 아내상으로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은 최근 남녀 직원을 대상으로 '바람직한 아내상'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모두 잘하는 슈퍼우먼'을 꼽은 응답자가 59.1%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반면 남편과 시댁에 잘하는 현모양처형을 선택한 경우는 17.8%로 그 뒤를 잇기는 했으나 슈퍼우먼형과는 격차가 크다.
▲이 같은 가치관의 변화는 무엇보다 가정생활도 경제적인 문제가 최우선이라는 데서 오는 현상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아내의 덕을 보며 사는 남편을 질시와 멸시의 대상으로까지 생각하는 경향이었으나, 남성들마저 이젠 경제력이 있는 여성을 선호할 정도로 달라져버렸다.
여권론자의 눈으로 보면 현모양처는 '여성이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로 보는 데서 나왔다'고 하겠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남녀 구별마저 없어지는 건 아닐는지….
▲여성들이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다 완벽하게 해내기는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닐 게다. 남성에게 아내의 내조가 필요하듯, 밖에서 일하는 여성도 안정된 가정생활 여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아내가 필요하다'고 직장여성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도 이젠 우스갯소리만은 아닐는지 모른다. 아무튼 이제 세상은 남편의 성공을 자신의 성취로 믿고 보람을 찾던 과거의 아내들처럼, 일하는 여성의 남편들도 아내의 성공을 자기 자랑으로 알고 도와주는 시대가 되고 있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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