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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코너. 저희 집 딸 초등학교 2학년 '이승은'을 소개합니다. 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제가 그러죠. "이제 아버지라고 하지도 말아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따식은 표정하나 안바꾸고 "외삼촌, 외삼촌". 이거 두들겨 패도 못하고. 아버지가 헛소리 잘하니 딸도 배우나 봐요.
또 하나 "니 그래도 되는 거야"라고 하면 "응, 그래도 돼". 요즘 아이들, 누가 좀 말려주세요. 이승은, 니 아부지한테 반항하는 거야.
나온 김에 '개인적 반항'도 있지만 '학문적 반항', 더 나아가 '역사적 반항'도 있었더라구요.저 유명한, 바로 '문화대혁명'이죠. 문화대혁명은 1966년 5월,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권력투쟁에서 밀리던 모택동의 사주로 시작되어 6년 반 동안 중국대륙에 광풍을 일으켰죠.
흔히 반항이나 반란은 나쁜 이미지 잖아요. 그래서 반란 세력들도 거창한 명분을 달고 나오는데, 문화대혁명은 노골적으로 반항이고 반란이고 했더라구요.
"반항도 이치가 있다. 천하대란은 천하대치에 이를 수 있다". 참, 멋있는 말이네. '문화대혁명'이 아니고 '문화대반란'이구만. 반란은 창조의 시발점인가. 말 번드르한 거 치고 결과 좋은 게 없다고. 권위주의 파괴라는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문화대혁명은 깊고도 큰 고통과 상처를 남겼죠.
또 나온 김에.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장남 등박방이 반신불수가 되고 동생인 등촉평이 자살을 강요당해서 철천지 한이 맺혔을 법도 한데, 등소평은 문화대혁명을 펼친 모택동을 향해 "모택동에게도 과오는 있다. 하지만 그의 일생을 통해 볼 때 공로가 훨씬 더 크다. 그의 과오가 3이라면 공로는 7이다. 특히 모택동 말년의 과오는 주변 사람들의 책임이 더 크다" 고 넘어갔다고 하네요.
한걸음 더 나아가 등소평은 한 미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에게 문화혁명은 처음에는 좋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중에는 좋은 일로 바뀌었소. 나는 이때 중국의 현실을 알고 중국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사색할 수 있었소"라고 말했죠. 덩치는 자그마한데 생각은 중국대륙만큼 넓구만.
각설하고. 딸이 어린 초등학생인데도 아부지인 저와 친구처럼 지내니 과거의 '부녀지간'하고는 천양지차죠. 마누라 왈, "딸은 어른인데 당신은 아이같다" 고 놀린다. 우째 이런 일이. 이거, 집에 군기 한번 잡아봐. 누구는 성질 없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고 지내는 거지 뭐. 딸이 너무 너무 귀엽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하는 건지 눈치 채셨죠. 딸은 제가 낳았거든요. 남자도 놓을 수 있어요.
증거 하나. 조선때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등 국문학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쌓은 송강 정철 아시죠. 양친상 이후 산소 옆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조석으로 슬피 운 효자중의 효자죠.
이분의 시조 가운데 " 아바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 두 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사라실까 / 하날 같안 은덕을 어데다혀 갑사오리". 보세요. 정철도 아부지가 낳았다니까요. 이헌태, 니 또라이가.
추가 하나. 정철은 '훈민가'에서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라고 노래했죠.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은 이뿐이라고 했네요. 이헌태의 이빨도 이번 생에서는 고치기 힘들 것 같아요.
이헌태의 종주기는 술만 나오면 바로 흥분하죠. 과부의 뭐처럼. 정철도 술꾼이었더라구요. 하여튼 조상들 중에 쬐금 똑똑하고 글 쬐금 쓴다고 하면 모두 다 술꾼들이니. 나, 원 참. 역시 술이 들어가야 글이 나오고 풍류가 나오는 가봐.
송강이 대사헌에 임명되었을 때 동인들이 술을 너무 마시는 것을 트집잡아 계속 탄핵을 했다고 해요. '성격이 편협하고 감정에 치우쳐 매사를 그르치는 인물'이라고. 선조가 오히려 두둔했죠. "정철이 술 좋아하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술 마시는 것까지 시비로 삼아서는 안된다. 정철은 바르고 곧은 사람이다. 단지 바른말 잘해서 미움을 살 뿐이다". 선조 만세.
정철의 장진주사도 있죠. 술꾼들이 18번이 없어서야.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꺽어 算놓고(셈하면서)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어지면 지게 위에 거적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꽃상여에 만 사람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쌀쌀한 바람 불 때/ 누가 한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 들 무엇하리"
송강 정철의 효에 대해 나왔으니 '효'를 잠깐 정리하고 넘어가죠.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 이황도 "아버지가 계시거든 찬찬히 삼가야 하니 안팎 나들이에 언제라도 늙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이런 까닭에 노래자는 그 나이 70이 넘어서도 때때옷 입고 어린아이와 어울려 놀아 그 어버이를 기쁘게 하였느리라"
둥둥둥. 중국의 '효자 4인방'. 강청 요문원 왕홍교 장춘교, '문화대혁명 4인방' 이 아니고요. 첫번째, 왕상. 아픈 어머니가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옷을 벗고 강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려하니 두 마리 잉어가 뛰어나왔다고 하네요. 두번째, 맹종.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으로 아픈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해서 대숲에서 슬피 울며 탄식하니 죽순이 겨울에도 스스로 솟아 나왔다고 하네요. 세번째, 초나라 현인인 노래자. 칠순의 나이에도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피우며 부모님을 즐겁게 했죠. 네번째, 증자. 공자의 수제자로 효성의 대가죠.
아니 효자는 효자라서 그렇지만 그 부모들은 참 한심한 사람들이구만. 겨울에 구하기 어려운 것 왜 찾아. 당신들이 부모고 인간이여. 슬슬 열 받네. 효자 만들기 위해 꾸며낸 얘기라구요. 그러면 그렇지. 사실 요새는 겨울에도 여름 산물을 쉽게 구하잖아요. 이헌태는 효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났구만. 뭐야.
조선 중기 시인, 임진왜란 뒤 관직을 사임한 뒤 가난 속에서도 안빅낙도의 삶을 살았던 박인로가 4명의 효자를 패키지로 모아 시조를 읊었죠. "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꺽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행에 양지성효 (養 志 誠 孝 : 어버이를 잘 봉양하여 그 뜻을 기리는 정성스러운 효성)를 증자같이 하리라"
나온 김에, 아니 떡본 김에 유명한 박인로의 '누항사' (더럽고 누추한 길에서 지내는 글) 가운데 일부. "어리석고 세상 물정에 어둡기로는 이 나보다 다한 사람이 없다 / 모든 운수를 하늘에다 맡겨 두고 / 누추한 깊은 곳에 초가를 지어 놓고 / 고르지 못한 날씨에 썩은 짚이 땔감이 되어 / 세 홉 밥에 다서 홉 죽 (초라한 음식) 을 만드는 데 연기가 많기도 하구나 / 덜 데운 숭늉을 고픈 배를 속일 뿐이로다 / 살림살이가 이렇게 구차하다고 한들 대장부의 뜻을 바꿀 것인가 / 안빈낙도하겠다는 한 가지 생각을 적을 망정 품고 있어서 / 옳은 일을 쫓아 살려 하니 날이 갈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다 / 가을이 부족한데 봄이라고 여유가 있겠으며 / 주머니가 비었는데 술병에 술이 담겨 있으랴 / 가난한 인생이 천지간에 나뿐이로다 ". 아 슬프다. 꼭 이헌태 얘기 하는 것 같구나. 이헌태가 아니고 이인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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