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2003 대구'(3)-대구 저력 보여준 'U대회'

입력 2003-12-25 11:49:44

지난 8월 대구시와 대구시민들은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IMF 파고로 2001년 대회를 포기하는 등 좌절을 맛보며 유치한 2003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U)는 대풍작이었다.

1995년 5월 매일신문이 대회 유치의 필요성을 알린 후 2003년 8월 21일 대회 개막까지 8년3개월간 인고의 세월을 보냈기에 수확의 기쁨은 더욱 컸다.

'하나가 되는 꿈'을 주제로 내건 대구 U대회에는 2001년 베이징 대회(165개국)와 88년 서울올림픽(160개국)을 능가하는 사상 최대 규모인 174개국에서 1만1천292명(선수 4천462명, 임원 2천181명, 심판진 552명, 보도진 3천50명, VIP 1천47명)이 참가했다.

여기에는 527명의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도 포함돼 있었다.

비록 대회 기간 중 보수 진영과의 마찰로 응원을 중단하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북한의 '미녀응원단'은 가는 곳마다 언론과 시민들로부터 집중적인 환영을 받았다.

대구 U조직위는 짜임새있는 대회 준비로 매끄럽게 대회를 진행했고 시민들은 자원봉사자(1만여명).서포터스(2만7천800여명) 활동으로 대회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자원봉사자들의 참석률은 98.4%로 다른 대회보다 30% 이상 높았다

대구 U대회는 대구가 폐쇄와 보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제화를 추구하는 '열린 대구'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대회 기간 발생했던 화제와 뒷얘기들을 요약해본다.

▨ 미녀응원단 열풍

대회 성패의 열쇠를 쥔 북한 미녀응원단은 진통 끝에 개막 전날인 8월 20일 오후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취주악단 120여명을 포함해 모두 303명으로 구성된 미녀응원단은 공항 도착 때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칠곡군 동명면 대구은행 연수원에 여장을 풀었다.

이들은 21일 남자배구 북한 대 덴마크전이 열린 대구체육관을 찾아 첫 응원을 펼쳤다.

잠시 서먹했지만 미녀응원단은 서포터스 등 국내 응원단.시민들과 호흡을 맞춰 '우리는 하나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반갑습니다' 등의 노래를 부르며 남북간의 거리를 좁혔다.

22일 여자축구 북한 대 독일전이 열린 김천종합운동장은 35℃가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미녀응원단을 보기 위한 관중으로 만원이었다.

이날 1만5천여 관중의 3분의 2정도가 북한 응원단 주변에서 자리 다툼을 했고, 취재진도 200여명이 몰려 이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들은 일부가 탈진으로 의무실을 찾기도 했지만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탬버린과 짝짝이 등 응원 도구를 이용, 화려한 율동과 노래로 경기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폐막 다음날인 1일 대구를 떠날 때까지 미녀응원단은 가는 곳마다 수백명의 취재진들을 몰고 다니며 숱한 얘기를 남겼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아름다운 얼굴과 청순한 이미지로 분단의 벽을 허무는 데 일조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높았지만 순수한 체육 대회를 변질시켰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 김정일 사진 현수막 철거 소동

28일 양궁경기장이 있는 예천에서 응원을 마치고 돌아가던 미녀응원단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실린 플래카드가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내걸렸다고 격분하며 철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 1시35분쯤 미녀응원단 200여명은 예천양궁장 진입로인 예천읍 청복1리 금강주유소 옆 목공예 작업장 입구에서 문제가 된 플래카드를 발견하고 철거한 뒤 접어들고 예천∼안동간 4차로 국도 500여m를 행진해 차량에 싣고 돌아갔다.

이들은 "김정일 장군님의 사진이 있는 현수막을 어떻게 저런 천박한 허수아비(장승을 지칭)에 매달아 놓을 수가 있느냐"며 울부짖었다.

플래카드에는 '북녘선수단 여러분! 다음에는 남녘북녘 하나 되어 세계를 뜁시다'는 환영 문구가 적혀 있었으며 좌측에는 한반도기와 우리는 하나(One Corea), 우측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 소동은 남북의 문화와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이후 미녀응원단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크게 바뀌었다.

▨ 박상하와 전극만

폐회식을 앞둔 31일 오후 4시 인터불고 호텔에서 북한 전극만(조선대학체육협회 위원장) 총단장과 대구 조직위 박상하 집행위원장은 이별의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불미스런 일이 있었지만 박 동무 덕분에 북남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전 동무 앞으로 평양에서도 만나고 자주 만납시다".

대구 U대회를 빛낸 두 주역 박상하 집행위원장과 전극만 총단장. 두 사람은 서로 동무라 불렀다.

U대회의 대구 유치를 주창하고 이를 성사시킨 박 위원장은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얘기하기를 좋아했다.

반면 북한 선수단을 이끌고 온 전 총단장은 표정 변화가 없고 입이 무거웠다.

전 총단장은 질문을 받지 않는 일방적인 기자회견으로 대회 당시 기자들의 원성 대상이 됐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동무는 살얼음판 같았던 대회를 우리 민족이 화합하는 대회로 이끌었다.

마찰이 있을 때마다 두 동무는 서로 만나 밤을 지새며 술을 마셨다고 한다.

전 총단장은 인터불고 호텔에서 술값을 내지 못해 새벽 늦게까지 박 위원장을 기다리기도 했다.

전 총단장이 대회 도중 철수를 주장하는 일행들을 달래기 위해 술을 샀는데 술값을 내야 할 박 위원장과 연락이 되지 않아 애를 태웠다는 것이다.

▨ '무적의 팀' 북한 여자축구

김철주사범대학 단일팀으로 구성된 북한 여자축구는 매 경기 골폭풍을 몰아치며 무실점으로 우승했다.

북한은 30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여자축구 결승에서 일본을 3대0으로 일축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독일전에서 6골, 프랑스전에서 9골, 멕시코전에서 5골, 대만전에서 4골을 터뜨린 북한은 대회 사상 첫 무실점 우승의 기록도 세웠다.

9골을 기록해 득점왕에 오른 리은심은 일본전에서 승리한 후 "김정일 위원장님께 승리의 보고를 한 것 같아 기쁘다.

열렬한 응원에 힘과 용기를 얻어 이길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북한의 김광민 감독은 "조선 여자는 강해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며 "소학교에만 200개가 넘는 여자팀이 있고 선수들은 단고기(개고기)를 많이 먹어 체력이 좋다"고 소개했다.

▨ 대회 먹칠한 교통사고

29일 오후 6시30분쯤 육상 경기가 열린 유니버시아드주경기장 부근에서 U대회 선수단 버스가 시내버스와 추돌, 외국인 선수 33명과 경호 경찰관 1명, 시내버스 여자승객 2명 등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수단 버스는 월드컵경기장에서 선수 등 46명을 태우고 선수촌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상당수 부상 선수는 다음날 열린 육상 결승에 나가지 못했다

국제대회 사상 유례가 드문 이 사고는 지하철 참사로 불안한 도시로 낙인찍혔던 대구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추락시켰다.

▨ 조직위도 놀란 수익

"잉여금을 얼마나 남길까". 성공적인 대회 개최에 노심초사했던 조직위는 지금 이같은 엉뚱한 고민에 빠져 있다.

조직위가 전혀 예상치 않았던 돈방석에 오르게 된 것은 대회지원법에 따른 옥외광고사업 덕분이다.

지난 9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열어 대회지원법 개정안을 심의, 대구 조직위가 옥외광고사업을 2006년까지 2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의결했다.

이로써 현재 500억원이 넘는 예비비를 갖고 있는 대구 조직위는 앞으로 200억원 이상을 더 벌 수 있게 됐다.

조직위는 이 수익금으로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과 협의, 대회를 기념하는 장학재단을 만들고 잉여금은 개최지인 대구시에 지원할 계획이다.

김교성기자 kg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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