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2003년, 한국영화 올해만 같아라". 한국영화계에 있어 2003년은 잊지 못할 한해였다. 저급 코미디 일색이었던 작품들이 자취를 감추고 다양한 장르의 수작들이 대거 쏟아지는 등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던 한국 영화시장이 흑자를 회복하기도 했다. 최근 영화 투자배급사 아이엠픽쳐스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 투자수익은 14억원으로, 한국영화 세 편 중 한 편 꼴로 남는 장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08억원을 손해봤던 것에 비하면 322억원이나 는 셈이다. 그 화려했던 2003년 한국영화계를 돌아봤다.
◇2003 한국영화 흥행 TOP 10
'수작 풍년, 걸작 홍수'. 2003년은 영화팬들의 눈이 가장 즐거웠던 한해. 작품성이 뛰어난 많은 한국영화들이 스크린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올해의 별중의 별은 단연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이었다. 전국 관객 525만명이 선택한 이 영화는 올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또 올해 특징은 300만명을 넘긴 영화 6편 모두 한국영화가 차지한 것. '동갑내기 과외하기'(493만명),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340만명), '장화, 홍련'(314만명), '오 브라더스'(314만명), '황산벌'(300만명) 등이 300만 클럽에 가입했다. 이번 주말 7번째 300만 영화에 이름을 올릴 것이 확실시되는 '올드보이'(289만명)와 '선생 김봉두'(250만명),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36만명), '위대한 유산'(230만명), '싱글즈'(220만명)가 그 뒤를 이었다.
◇한국영화 점유율 50% 시대
올해는 한국영화가 시장점유율 50%를 넘어서는 등 거칠 것 없이 질주하는 폭주기관차를 연상시킨 한 해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20%대에 머물던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쉬리'가 대박을 터뜨린 1999년 39.7%로 급물살을 타다가 '친구', '조폭마누라'로 인해 2001년 50.1%로 꿈의 시대에 진입했고, 지난해 48.3%로 주춤했었다.
영화진흥위원회 황동미 연구원은 "미국, 인도를 제외하고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긴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며, 프랑스와 일본도 30% 안팎"이라고 했다. 또 전문가들은 이 여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극장체인 프리머스 강용석 투자총괄대표는 "작품성 있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관객지지도가 높아지면서 수준 높은 영화들이 경쟁력을 되찾게 됐다"며 "이러한 추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여 한국영화는 당분간 낙관적"이라고 내다봤다.
◇웰메이드(Well Made) 영화가 몰려온다
"올 상반기에 '살인의 추억'이 있었다면 하반기에는 '올드보이'(박찬욱 감독)가 있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올해에는 '웰메이드' 영화가 극장가를 제압했다. 견고한 시나리오와 연출력 등으로 평단과 관객들에게 작품성을 인정받은 여러 영화들이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 과거 몇몇 스타 배우들의 호소력(?)이나 무조건 웃기기식에 영화의 흥행을 맡긴 것과는 대조적인 변화다.
CJ엔터테인먼트 박동호 대표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끌어낸 여러 작품들이 성공하면서 기존의 기획 및 컨셉 중심의 한국영화 제작흐름을 바꿔놓았다"며 "향후 몇 년간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런 웰메이드 영화 제작열풍이 불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포영화 전성시대, 블록버스터 참패
많은 제작자들이 손에 꼽는 올해의 사건 가운데 하나가 공포영화의 흥행질주였다. '장화, 홍련'(김지운 감독)을 필두로 '여고괴담 3', '4인용 식탁', '거울 속으로' 등이 올 한해 한국 호러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제작자들은 "기존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영상미학과 '공포'라는 주제를 현실 속의 사회문제와 함께 접목시키는 노력 등이 관객들에게 어필했던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블록버스터=참패'라는 등식은 깨지지 않았다. '튜브', '천년호', '내츄럴시티', '청풍명월' 등 4편의 손실액은 총 200억 원을 넘었다. 더 이상 물량만으로는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셈. 그렇다면 총제작비만 83억원을 들인 '실미도'와 내년 초 선보일 130억짜리 '태극기 휘날리며'는 과연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퓨전 사극
올해 극장가를 강타한 키워드를 꼽는다면? '불륜', '복수', '동거', 그리고 '퓨전'이 아닐까. 그중 퓨전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극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면서 '퓨전 사극' 열풍을 낳았다.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정통 사극과 달리 현대적 감각과 스타일로 옷을 갈아입은 퓨전 사극이 영화팬들의 구미를 당긴 것.
'폐인'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다모'와 '대장금'이 안방극장을 달궜다면, 조선시대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감독)·'낭만자객'(윤제균 감독)과 삼국시대의 '황산벌'(이준익 감독) 등은 스크린 퓨전 사극이라는 새로운 문화코드를 선보였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조두진의 인사이드 정치] 열 일 하는 한동훈 대표에게 큰 상(賞)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