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희기자의 청암사 승가대학 학인들의 하루 체험

입력 2003-12-20 08:52:42

새벽 3시. 어둠을 깨우는 도량석(목탁을 치며 경내를 돌면서 도량을 청정히 하는 염불 의식) 목탁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청아한 소리는 추위속에 차분히 잠든 모든 산, 나무, 숲을 깨운다.

이부자리를 접고 방을 나섰다.

산사의 겨울이 유난히 춥다고 하더니 이렇게 떨릴 줄이야.

"뭐하러 왔어요"핀잔

비구니 승가대학 학인(학생)스님들의 하루는 어떨까. 세속적인 궁금증을 안고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의 천년고찰 청암사 승가대학을 찾은게 어제였음을 문득 깨닫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어제는 청암사에 도착하자마자 승가대학의 강주(講主.학장)이자 주지인 지형(志炯) 큰스님부터 찾았다.

학인스님들과의 하루 체험을 청하자 큰스님은 대뜸 "뭐하러 왔어요"라며 핀잔이었다.

"홍보가 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학인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걱정에서였다.

겨우 허락은 받았지만 낯선 속세인의 방문을 다소 불편해하는것 같아 "이곳은 금남의 집 아닙니까"며 괜히 물어봤다.

옆자리의 상덕(常德) 강사스님은 "산란한 속인들만 출입을 금하는 것이지 모든 남자들의 출입을 금하는 건 아니다"고 하신다.

불청객을 산란한 놈이 아니라고 생각하신건지 지금부터라도 산란함을 벗어던지라는 말씀인지 아리송할 뿐이다.

어제일을 떠올리며 자세를 고치는 사이 운판(구름모양).목어.법고.범종 등 사물(四物.부처님의 법음을 전하여 조류.어류.네발짐승.지옥중생을 구제하는 법구)의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들려온다.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비비며 도량석 목탁과 사물 소리로 승가대학 학인스님들과의 새 하루를 시작했다.

벌써 학인스님들은 새벽예불 준비로 부산하다.

새벽예불 결국 중도포기

이곳 새벽예불은 대웅전과 정법루에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제대로 해보겠다고 욕심내고 학인스님들과 함께 부처님을 향해 무릎꿇고 좌정했다.

잡념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다.

일어서 절하고 무릎꿇고 몇번은 따라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다리가 저려 일어설수가 없다.

그러나 눈길주는 스님은 없다.

각자 기도에 여념이 없다.

새벽 간경시간(경전을 소리내어 읽으며 예습하는 시간). 하루 세번있는 간경은 학년별로 모여 이뤄진다.

어제 오후 7시30분에는 대교과 스님들의 논강(다음날 수업할 내용을 간경시간에 미리 예습한후 토론하는 시간)에 참석했다.

20여명 학인스님들이 모여 화엄경을 논강하는 동안 알지못하는 책과 가끔씩 공부에 열중인 스님들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새벽 간경시간도 어제처럼 멀뚱히 앉아있기 미안해 아침 준비하는 공양간을 찾았다.

공양주 스님 두분이 130인분의 죽(아침은 늘 흰죽)을 끓이기 위해 바쁘다.

이곳에선 삼시세끼 아궁이 장작불로 밥을 짓는다.

불을 지피는 스님의 머리는 온통 그을음 투성이다.

비질청소는 '그림그리기'

공양주 스님은 "속세 되보단 약간 크지만 절 됫박으로 5, 6되 정도 쌀로 한끼를 짓는다"고 했다.

쌀을 비롯 이곳의 음식 대부분은 학인들이 자체 생산한 것들이다.

이때문에 봄.가을철엔 운력(運力.일상생활에 필요한 노동)이 특히 많다.

체험 도우미(?)로 큰스님께서 소개해준 두 학인스님중 한 지객(안내하는 스님)스님에게 너무 춥다고 엄살을 떨자 "이 정도는 추운 것도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다른 지객스님에게 잠이 부족하지 않냐고 묻자 "소등과 함께 곯아 떨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인 새벽 3시를 넘기면 되레 허리가 아프다"고 하신다.

죽 한그릇으로 아침을 끝내자 오전 6시50분. 아직도 산사는 깜깜하다.

아침 도량 청소시간이다.

어제 도착해 어설프게 시간을 보낸게 마음에 걸려 자청해 대웅전 마당을 쓸었다.

좌우 곡선으로 비질을 하는 탓에 이곳에선 청소를 '그림 그린다'고 한다.

"재미있죠". 지객스님이 물어와 "이제 밥값은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상강례(수업시작을 불전에 고하는 의식)와 문강(수업)시간. 수업에 다소 방해가 된다고해 체험은 포기했다.

수업장소인 대방은 육화료(六和療)라 부른다.

신(身).구(口).의(意).계(戒).견(見).리(利) 등 대중끼리 6가지를 화합하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흐트러짐없이 정돈된 학인스님들의 털신이 신기해 몇번씩이나 만져봤다.

똑같은 모양의 신발들이 서로 바뀌지나 않을까 별걱정을 다해본다.

지객스님은 "서로 신발이 바뀔 경우 벌로 3박4일간 공양주 소임이 내려진다"고 한다.

학인들 자급자족 생활

이젠 사시마지(부처님 공양)시간. 조석예불과 달리 부처님을 위해 공양올리고 기도하는 시간이다.

무릎 꿇는건 포기하고 양반자세로 앉았다.

이곳 강원(講院.승가대학)에 수행중인 학인스님은 모두 130여명. 대부분 출가해 정식 비구니 스님이 되기전의 예비 스님들이다.

청암사 강원의 학훈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부처의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 이곳 생활은 철저히 대중생활 개념으로 이뤄져 개인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서 학인스님 저마다 자급자족의 대중생활을 이끌어갈 소임들이 주어져 있다.

4년 동안 스님다운 스님이 되기위해 각종 지식도 습득하지만 이보다 경(經)을 통해 혜안을 뜰때까지 자신을 이겨가는 수행과정을 더 중요시한다.

"뭐좀 깨우쳤어요"

점심공양 반찬은 김치.동치미.무 볶음.오이무침.배추국이다.

스님들은 발우(스님들의 밥그릇)공양을 했지만 기자에겐 따로 상을 차려 줬다.

된장찌개와 김.부침.도토리묵까지 얹었다.

조미료를 전혀 넣지않은 음식들은 별미여서 너무나 달게 먹었다.

점심공양 후 짐을 챙겨 큰스님을 찾았다.

큰스님은 대뜸 "뭐 좀 깨우쳤어요"라고 물으신다.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말에 "그래, 뭘 배우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지. 이 시간동안 뭘 깨우친다면 모두가 부처님되지…". 들으라는 말인지 혼자말인지 큰스님의 반문이다.

처사를 배웅하러 따라 나오신 지객스님에게 "학인 생활동안 뭘 깨우쳤습니까"하고 되물었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휘날리는 풍경속의 물고기같던 자신을 벗어나기위해 지금도 열심히 수행할 뿐이지요".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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