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나눔도 禍'인 세상

입력 2003-11-14 15:00:00

고대 중국의 소광(疏廣)은 '부자중원(富者衆怨)'이라 했다.

'부자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원망을 받는다'는 뜻이다.

조선조의 실학자 성호(星湖)도 '혼자서만 부를 누리면 원망이 모여들게 마련이니, 원망이 지극하면 비방이 생기고, 비방이 생기면 화가 싹트며, 재화가 싹트면 몸이 망한다'고 했다.

중국 도(陶)나라 부자 도주공(陶朱公)의 고사는 그 해탈의 좋은 예를 보여줬다.

월(越)나라 사람이었던 그는 구천을 피해 제(齊)나라로 건너가 막강한 부자가 됐다.

그러자 대신이 돼 줄 것을 요청하는 등 엄청난 유혹이 따랐다.

그러나 모든 재산을 다 나눠준 뒤 도나라로 가서 숨어살았다.

▲도주공은 부자가 부나 권력에 집착하면 화를 부를 수 있으므로 그것을 과감하게 벗어 던진 경우였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런 나눔과 베풂이 또 다른 화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하려고 어렵게 모은 재산을 털어 기부를 하면, 손을 벌리는 사람들이 줄줄이 몰려드는 성화에 못 이겨 급기야 숨어 다니는 소동이 벌어지는 판이다.

▲지난달 부산대에 350억원을 기부하고, 이 달 들어 1천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키로 한 부산의 (주)태양 송금조(宋金祚) 회장이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모양이다.

'카드 빚 갚아달라' '더 좋은 곳에 기부할 수 있게 해주겠다' '후원회장 돼달라'는 등 도움을 바라는 청탁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송 회장은 병원 등에서 요양 중이고, 부인도 피해 다니는 형편이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돈을 기부 받은 대학, 송 회장의 회사와 학교법인 등 그와 연이 닿는 모든 곳마저 청탁의 대상이 되고 있을 정도니 해도 너무 한다.

심지어 자제가 없는 그지만, '아들과 친하니 연락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오는 등 거짓 방법까지 동원되고 있다니 기가 찬다.

서양의 한 철학자는 '돈은 번뇌와 비애의 근원'이라고 했다지만, '부자중원'을 비켜서려는 차원을 넘어선 '아름다운 기부'에도 번뇌와 비애는 비켜서지 않는 세상이 돼 버렸다.

▲송 회장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성실하게 돈을 모아 부자가 된 경우다.

군 복무 시절 면회 온 어머니에게 곰탕 한 그릇 사주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 돼 근검절약하며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돈은 누구보다도 소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푼을 아끼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따뜻한 사회를 위해서 아낌없이 내놓지 않았던가. 그 고귀한 일 앞에서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온갖 검은 마음으로 손을 벌리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사회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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