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새벽 필리핀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무장세력의 일시점거 사태는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의 권력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예비역 대령을 포함해 3명으로 알려진 무장 괴한들은 관제탑을 점거한 이후 자
신들이 테러범들이 아니라고 주장한 뒤 이제 필리핀국민들이 행동할 때가 됐다며 동
참을 촉구했다. 괴한들은 출동한 군경에게 2명이 사살을 당하는 등 곧장 제압돼 표
면적으로는 사태가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지난 7월27일 소장파 장교들이 군개혁을 촉구하면서 주도한
불발쿠데타 이후 두번째로 발생했다. 이는 군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
설 수 있다는 그 동안의 경고를 현실로 나타낸 것이다. 또 이번 사태는 7월 쿠데타
에 자극을 받은 아로요 대통령이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힌 군심(軍心) 달래기가 실
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쿠데타 이후 군 안팎에서는 전현직 장성들을 중심으로 아로요 대통령을 권좌에
서 축출하려는 또 다른 기도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소문과 경고가 끊이지 않았
다.
이런 소문을 달래기 위해 아로요 대통령은 극소수의 지지파 장교들을 동원해 쿠
데타 기도의 인물들에 대한 달래기와 군부대 방문 등 고육지책을 마련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특히 쿠데타 장교들이 내세운 군부의 만연한 부패 척결과 군무원 처우 등
에 대한 요구조건 수용에 나섰다. 그는 쿠데타가 열악한 처우를 참지 못한 일단의
젊은 군인들이 일으켰다는 점을 시인하면서 군부패 척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
했다.
이를 반영하듯 아로요 대통령은 우선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지목되어온 고급 장
성들의 장비구매 간여 문제와 관련해 이들을 배제하는 한편 군장비 예산업무를 군에
서 예산부처로 이관할 계획을 발표했다. 또 1억페소(180만달러)를 우선 지원해 일선
에 배치된 군인들의 군화 등 기본장비를 개선하는 한편 전투유공자들에 대한 주택보
조금과 자녀장학금을 우선적으로 지급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군사원조를 추가로 이끌어내기 위해 다바오공항에 대한 폭탄
테러를 배후조종하는 등 '비밀 자작공작'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던 빅토 코퍼스
군정보사령관을 현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등 부패, 정치군인들에 대한 과감한 숙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아로요 대통령의 이런 약속은 사실상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 군내부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아로요 대통령이 민다나오섬 등 남부지역에서 아
부 사야프,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등 이슬람무장조직들에 맞서 힘겨운 전투에
투입된 군부대를 방문, 장병들을 격려하는 등 대군(對軍) 접촉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과 내년 5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정치쇼'에 불과할 뿐 군개혁
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군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더구나 사법부 예산을 전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할라리오 데이비데 하원의장의
탄핵을 둘러싼 정쟁과 필리핀 페소화의 가치 급락 등으로 대변되는 경제난 등으로
정국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로요 대통령은 이렇다할만한 수습책을 제시
하지 못한 채 대선 출마에만 급급하고 있는데 군의 불만이 고조되고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번 마닐라 공항 관제탑 점거사태도 납득할만한 정국 치유책과 군개혁책
을 아로요 대통령이 추진하지 못하면 가뜩이나 취약한 현정권에 맞서 군이 얼마든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경고를 사실로 과시한 셈이다. (마닐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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