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Edu net-영화 대 영화(시몬)

입력 2003-10-03 09:03:59

트루먼쇼 작가가 감독한 영화 '시몬'

우선 명배우 알 파치노의 고단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피곤하고, 지치고, 힘든 한 사내가 특유의 쇳소리 섞인 음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인썸니아'에서도 그랬죠. '여인의 향기'에서는 알 파치노가 이렇게 외칩니다.

"I'm too old, too tired, and too fucking blind!".

이번에는 까탈스런 여배우 때문에 고생하는 영화 감독입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던 영화감독 타란스키(알 파치노)는 여주인공(위노나 라이더)의 계약 파기로 야심찬 신작이 중단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스타의 '횡포'에 진절머리가 난 그에게 의문의 소포가 배달됩니다.

입맛대로 배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신비의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만 있으면 어떤 캐릭터도 디지털로 만들수 있죠. 그래서 태어난 완벽한 여배우의 이름이 시몬입니다.

사람들은 '가상의 캐릭터' 시몬을 실제 인물로 알고 열광합니다.

타란스키도 점점 그녀에 빠져들죠. '시몬'(Simone)은 알고 보면 '시뮬레이션 원'(Simulation One)의 약어입니다.

줄이자면 '시몬'은 전 세계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영화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스타에 대한 비이상적인 열광, 가짜라도 대중을 미치게 할 수 있다면 미덕이 아니냐는 현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녹아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앤드류 니콜입니다.

바로 '트루먼쇼'의 작가이죠. 그는 TV의 허구를 이 영화를 통해 잘 꼬집어냅니다.

과연 우리가 보고 있는 TV 속의 인물이 진짜일까. '장안의 화제'(?) 이효리가 실존인물일까.

실제 할리우드에서는 배우가 필요 없을 정도로 디지털 기술이 개발돼 있습니다.

이러다간 '로마의 휴일'까지 오드리 헵번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합성시키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런데 더 큰 것은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중이 믿어버리면 그것이 진실이 돼 버리는 것입니다.

시몬은 아카데미상은 물론 CNN과의 인터뷰, CF, 세계 각국을 연결한 위성중계 콘서트까지 엽니다.

타란스키는 "한 명보다 10만명을 속이는 것이 더 쉽다"고 합니다.

대중의 집단 최면성을 경고하는 대사입니다.

스타는 원래 가공되는 것이죠. 거기에 동원되는 것이 미디어입니다.

그렇게 보면 '시몬'은 미디어의 허구, 비이성적인 작태까지 고발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맹목적인 스타 추종, 그것을 만들고 좇아다니는 것이 뫼비우스의 띠같은 미디어의 속성이겠죠.

'시몬'에는 현대 문화에 대한 시니컬한 비판들이 녹아 있지만, 경쾌하고 가볍게 그려나갑니다.

그래서 크게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결말에 시몬이 이제 영화를 그만 두고 정치에 진출하고 싶다고 인터뷰합니다.

정치까지 대중적 코드로 사기칠 수 있다는 말이겠죠.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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