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침침해지는 눈이지만 한번 크게 부릅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과 행태를 살펴보건데, 우리 사회의 발전 양식은 티격태격 과격의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지? 토론도, 파업도, 부부싸움도, 대개 이런 형식과 수순으로 진행이 된다.
토론이나 협상의 경우, 지루하게 토닥토닥 말의 탁구를 치다가 팔이 저리고 싫증이 나면, 그래서 왠지 공을 앞사람이 아닌 옆 사람과 치는 기분이 들면, 갑자기 욕과 눈이 동시에 튀어나오고, 심지어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 보듯 상대의 머리채는 물론 존재의 뿌리마저도 뽑으려는 과격에 돌입한다.
파업도 노(勞)가 붉은 머리띠를 두르면 사(使)는 입을 다물고, 勞가 삭발을 하면 使는 외면을 한다.
그러면서 고속도로가 막히고, 얼마 후엔 길이 보이지 않거나 아예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는 기계도 사람도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지루한 휴일에 돌입하게 된다.
부부싸움도 어쩌면 같은 패턴일 것이다.
한 쪽이 투덜대면 다른 한쪽은 고함으로 누르고, 비명을 지르면 발길질까지 한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변증법이요, 정반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경우, 엊그제 보도된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보았듯이, 티격태격의 과정이 없다.
항상 목소리의 볼륨을 최고로 올리고 이야기를 하니까 더 이상 고성이 있을 수 없고, 정치에서 거수 이외의 의사 표시가 전무하니 폭력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과정은 없고 결론만 있는 모노레일 같은 북한의 방식에 비하면 그래도 상하행선은 물론이고 노선변경이나 무단횡단이 빈번한 티격태격이 보다 나을는지도 모른다.
티격태격은 민주사회가 밟는 일상적 절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경우 절차 없어 혼란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그것이 비교적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지만 종종 너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파업과 이기주의적인 시위는 민주절차의 효용성과 정당성마저 시험할 정도이다.
노사의 관계가 달걀과 바위일 당시에는 별다른 충돌이 없었는데, 어느새 달걀들이 닭 대신 돌멩이가 되고 바위가 되어버려 서로가 서로의 모서리를 부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사소한 충돌도 거대한 폭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항상 유혈이 낭자하다.
"남과 다투면 웅변이 나오고 자신과 다투면 시가 나온다"는 예이츠의 말은 우리 상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툼과 충돌에 흘러넘치는 에너지는 금세 방전되어 사회발전의 역동적인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다.
티격태격 과격의 양태는 어쩌면 권투 경기와도 같다.
티격태격은 벨이 울리자 선수가 주먹을 들어올리고 서로의 주위를 공전하면서 탐색을 하다가 틈틈이 잽을 주고받는 것과 같다.
잽이란 티격태격 공방은 이내 스트레이트 펀치로 발전한다.
이 강력한 펀치는 쭉 뻗어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휘둘러지기도 하지만 티격태격의 지루함을 해소시킬 수 있기에 기다려지는 결론이기도 하다.
이 같은 결론에는 결코 과격함이 있을 수가 없다.
설사 잽도 없이 스트레이트를 날린다 해도, 계속 목표를 빗겨간다 해도, 그 때의 과격함은 스타일의 문제이지 룰의 문제는 아니다.
반면, 우리의 티격태격 싸움은 대개가 스타일이 아닌 룰의 문제이다.
경기도중 상대에게 주먹이 아닌 귀를 물어뜯는 예측불허의 반칙, 즉 눈먼 과격 행동 말이다
우리의 국회 의원선수들, 노동운동을 하는 선수들은 바로 이런 경기에 익숙해 있다.
실력저지, 강력투쟁, 예고 없이 아예 사각의 링을 떠나버리는 반칙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반칙에 대한 벌칙마저도. 스포츠로 끝나야 할 경기가 사생결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돌아보건데, 우리의 대부분 국가적 혼란은 바로 티격태격 과격의 행동 패턴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당의 분당사태와 한나라당의 세대 갈등은 바로 이런 이유로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바다에 흘러드는 강물처럼 각자의 사소한 이해를 국가 전체의 대의 앞에 반납할 수 있어야 하건만, 각자가 망망대해에서 자기 몫을 나누려고만 하니 바람에 뒤엉킨 성난 파도가 이를 허용 할 리 만무하다.
추석 명절이라 산에 올라 성묘를 하면, 산 위에 소복이 쌓인 흙무덤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고개 들어 하늘에 뭉친 흰 구름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하나는 땅 위에서 허무하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덧없나니, 매월당 김시습의 시를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구름 가고 구름 와도 산은 다투지 않네" (雲去雲來山不爭).
최병현(호남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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