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2003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의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 결정은 대구U대회가 종합대회 성격으로 부상할 추가 호재(好材)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치러진 21회 대회를 보면 '대학생들의 축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봐야한다.
가장 최근 대회인 '북경U대회'도 '올림픽 연습대회'나 비슷한 정도로 볼수 있다.
경제적인 효과도 상대적으로 뒤지고 도시대회 성격이기 때문에 세계 이목 집중을 바라기는 좀체로 힘이든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남·북한 대학생들이 대구에서 만나는 '이벤트 연출'은 단숨에 전세계 이목을 끌수 있다는 점이 역대대회와 다른 대목이다.
▲남·북한 체육교류는 76년 방콕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첫 삽을 떳다.
그후 10여년동안 막혔던 스포츠교류는 90년 10월 '남북통일축구대회'가 평양과 서울에서 교차개최로 이어지고 마침내 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해 여자단체전에서 우승을 따낸다.
한반도 전체가 열광으로 들뜬 기억을 지금에 되새겨도 그때의 감격으로 몰입하게된다.
이해 5월6일 세계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해 8강에 진출했었고 지난 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에 남북선수들이 손에 손잡고 동시에 입장한게 남북 스포츠의 교류일지다.
▲지금이야 남·북한 체육교류에 대해 순응적(順應的)인 반응이지만 60년대는 이념의 대결과 같은 수준의 감정이 대세였다.
63년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요청한 64년의 도쿄올림픽 남북한 단일팀 구성도 소모적인 논쟁으로만 끝맷음한것도 실례(實例)다.
그때 스위스 로잔등서 남·북체육회담이 13차례나 열렸으나 입장순서, 기(旗)게양등이 걸려 합의도출은 실패였다.
회담결렬은 이후에도 되풀이 됐다.
79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제35회),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의 단일팀구성을 위한 체육회담은 역시 소모전으로 맷음 했었다.
88년올림픽 공동개최도 논의로만 끝난 '대립행적'이다.
▲'북한 신드롬'이 재연될 대구U대회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선수들이나 응원단에 지나친 초점 맞추기는 역작용을 불러올수도 있다.
참가국들의 오해등으로 인한 분위기 조성과 지속에 장애가 생기면 '성공대회'에 차질이 걱정스럽다.
한 민족 연장 선상의 환대·지원은 당연한 일이되 '알찬대회'가 되도록 균형유지가 바람이다.
지금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예산낭비 등 지적을 '분위기 다잡기'로 활용할 겸손도 있어야 한다.
대구U대회가 일회성 아닌 지속적인 남북체육교류를 담은 '남북체육협정'체결의 장(場)이 되면 더욱 금상첨화가 아닌가.최종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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