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 북한 모두 기로에 서 있다.
미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개발 문제를 놓고 북한과 협상을 벌이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아예 지금부터 북한 정부의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향한 조치를 시도하는 것이 옳은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데는 앞으로 북한과의 합의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기저에 있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면담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하자는데 합의하였으나, 만일 평화적 해결이 어려울 경우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다.
따라서 외면상으로 볼 때 미국은 지금 당장 협상과 북한 흔들기 등의 2가지 방향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en가지 모두를 추구할 수 있는 정책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선두로 한 협상론과 딕 체니 부통령,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선두로 한 강경론 양쪽이 모두 다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양 움직임은 서로가 대치하고 반목하는 입장이 아니라 양자가 합력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북한 선박 검색과 입항저지 개시, EU의 중심 국가들의 핵 문제 UN 안보리 거론 등은 모두 북한 체제에 압력을 주는 미국의 물밑 정책이 이미 가동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일전 제네바 유엔 인권회의의 북한 인권문제 공식 거론도 이런 움직임의 하나이다.
최근 필자는 북한에 대하여 장기적인 지원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오던 국제기구의 한 고위 인사로부터 이들 기구들이 북한을 지원하는 모든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하였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북한 흔들기는 지금 한국을 비켜가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북한 흔들기 움직임을 위한 협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국의 입장 즉,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용인할 수 없으나, 이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입장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해답을 가져오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외교적 방법으로 북한과 교섭을 통하여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합의를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효과가 있는가 하는데 있다.
북한과의 합의는 북한 측의 선택으로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북한은 애당초 러시아로부터 실험용 핵 시설을 도입할 때를 포함하여 핵무기 확산 금지 조약에 가입하라는 러시아의 요청, 이 조약의 집행을 맡은 IAEA, 남북 비핵화를 합의한 한국 및 제네바 합의를 교섭한 미국과 총 4차례의 약속을 어긴 전례가 있다.
최근 북한의 우라늄 농축계획을 보고 중국까지도 강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으로서는 북한 정권의 타도를 시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은 이라크와 달리 세계 5, 6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남한과 주한미군에게 강력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한 북한이 몰락할 때 한반도를 위시한 동북아의 안정에 큰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라크와 달리 경제적 취약성을 갖고 있다.
북한을 고립시키면 북한은 경제적으로 지탱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미국 전략가들의 생각이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북한에게 기회가 있다고 본다.
미국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동안 북한은 시의를 잡는 정책적 선택이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은 과감하게 핵개발계획을 포기하고 우선 교섭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모든 장애를 자진 제거해야 한다.
교섭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동안 북한은 왜 자신의 다음 합의가 과거 합의와 다르다는 점을 미국과 세계에 확신시켜야 한다.
아울러 북한은 이 다음 협상에서 무슨 새로운 대가를 얻어내기보다는 이미 얻은 것을 유지하는 선에서 잃어버린 대외 신인도를 올리는데 주력해야 한다.
북한은 오뉴월의 우기를 맞는 농사꾼의 위치에 서 있다.
우기를 놓치면 올해 쌀농사는 끝이다.
농사꾼과 다른 것이 있다면 농민은 내년을 기다릴 수 있지만, 북한에게는 내년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게는 1년이라는 시간이 없을 수 있다.
유종하(서강대 교수, 전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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