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라이프-대구 중부소방서 119구조대

입력 2003-03-14 09:17:50

대구 중부소방서(서장 김원용) 119구조대원들은 대부분 요즘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대구지하철 참사현장에서 인명 구조활동을 벌이며 겪었던 신체적 정신적 충격때문이다.

사고 당일인 지난달 18일 관할인 지하철 중앙로역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대원들은 평생 잊지 못할 참혹함을 경험해야 했다.

공기호흡기로 숨을 쉬며 대원들이 내려갔던 지하역사는 생지옥 바로 그 자체였다.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로 한치 앞도 못 보는 상황에서 곳곳에서 들려오는 "살려달라"는 비명소리, 계단에 쓰러져 있다 대원들의 발목을 잡는 사람들, 탈출구를 찾지 못해 공포에 질려 헤매던 사람들로 사고현장은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춘복(48) 대장은 "구조작업을 하면서도 당시의 상황이 워낙 처참해 현실로 느껴지지 않고 자신이 꿈속을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하철 참사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털어놨다.

생존자의 상당수는 중부소방서를 포함, 대구시내 소방서에서 출동한 119구조대원들의 목숨을 건 구조노력에 의해 살아났다.

대원들은 그러나 아직까지 저녁에 잠이 들었다가도 얼마 못가 깨어나는가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또 귀밑 등 노출된 피부들은 화재 열기로 입은 화상으로 통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변재관(42) 소방교는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사지를 오르내리던 중 자신의 공기호흡기를 구조중인 승객과 나누어 쓰다 공기가 소진되는 바람에 결국 유독가스에 정신을 잃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열흘간 입원했다 퇴원했지만 아직 몸이 완전치 못하다.

변 소방교는 동료대원들이 아니었더라면 목숨을 잃을 뻔한 아찔했던 그 순간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14명의 대구 중부서 119구조대원들은 이처럼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재난과 사고현장마다 달려가 위험을 무릅쓰고 소중한 생명을 건지는 임무를 다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을 2교대로 근무하는 중부서 119대원들의 담당지역은 대구시 중, 남구 관내 26개 동. 다중이용시설이 밀집한 도심이 많이 포함돼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신경도 훨씬 더 많이 쓰인다.

대원들은 비번 일때도 영화관 등 대형건물과 화재취약시설을 찾아 사고발생에 대비, 내부구조파악, 지리조사 등을 수시로 해야 하는 형편이다.

119구조대원의 최우선 조건은 체력. 이로 인해 공수, 특전 등 특수병과 출신 군 경력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중부서 119대원들은 평소 등산, 마라톤, 헬스 등 다양한 운동으로 체력을 다진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재난사고를 비롯해 화재, 교통사고 등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주업무인 인명구조 작업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종수(41·소방장) 부대장은 "체력이 달리면 버텨내지 못하기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대원들 스스로 자기체력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공식적 훈련만도 여름, 겨울 두차례 훈련과 산악, 화생방, 헬기구조 훈련이 실시되며 자체 소방서별로 산악인명 구조훈련 등이 이루어진다.

119업무 특성상 '자기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동료'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식하다 보니 대원들간의 유대는 어느 조직보다 끈끈하다.

윤국범(35) 소방사는 "근무 여건으로 인해 자주 친목을 다지는 기회를 가질 수는 없지만 팀웍이 생명이다보니 인간적 관계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명절도 공휴일도 없이 근무하며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는 대원들의 가족들은 자나깨나 걱정이다.

이번 지하철 참사때도 대원들이 유독가스와 불길이 타오르는 지하철 역사에서 생존자들을 들쳐업고 올라오는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 되는 순간, 대원들의 가족들은 남편과 자식의 안전에 남모르는 애를 태웠다고 한다.

대원들은 가족들이 항상 '조심하라'고 이야기 하지만 막상 '살려달라'고 하는 구조요청을 듣거나 뻔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 자기가 당할 위험은 생각지 않고 우선 구조해야한다는 생각뿐이어서 불속이든 어디든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대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이다.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대원들에게 주어지는 위험수당은 월 3만원이 고작이다.

변재관 소방교는 "9·11테러 발생때 보듯 미국에서는 소방관을 영웅적으로 대접해주는데 비해 아직 우리나라는 처우는 물론 소방관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이번 지하철 참사 구조작업 이후 시청 홈페이지 등에 소방관의 노고에 감사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있는 것을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윤종수 부대장은 "인명을 구조하는데서 오는 보람이 없다면 대원생활을 견뎌 내기 힘들다"며 사명감과 긍지로 힘이 닿는 한 맡은 바 임무를 다할 것을 다짐했다.

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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