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라이프-태극기 보급 선양회원들

입력 2003-01-24 10:26:12

3·1절이나 광복절 등 국경일엔 어김없이 태극기가 펄럭인다.

거리에, 자동차에, 사람들 손에 손에…. 이 땅에 처음 태극기의 물결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누굴까. 두말 할 것 없이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운동에 참여한 민중들이다.

기미독립 운동을 잊을 만큼 세월이 지난 이후 다시 태극기의 물결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사단법인 태극기 보급 선양운동 대구광역시협의회. 1980년 3·1절을 시작으로 매년 3·1절과 광복절에 태극기를 보급하고 알리는 운동을 펼친다.

3월의 꽃샘 추위, 8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태극기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공원에 모여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시민들,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가두행진을 펼치는 사람들…. 그 행렬의 맨 앞에 선 사람들이 바로 태극기 보급 선양회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태극기 보급 선양회가 펼친 사업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다.

1980년 3·1절 태극기 보급을 시작으로 매년 1천여장의 태극기를 보급하고 있다.

또 곳곳에 현수막을 걸어 국가 기념일이 왔음을 시민들에게 일깨우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선양회는 1981년 대구시 수성구 욱수동 거리에 처음 태극기를 걸기 시작한 후로 고산국도 등에 태극기를 걸었다.

태극기 걸기 운동은 그렇게 조금씩 퍼져나갔고 요즘엔 국경일마다 거리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볼 수 있게 됐다.

거리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이 그들만의 노력은 아닐 테지만 태극기 보급 선양회의 숨은 노력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작은 스티커 태극기를 붙이거나 태극깃발을 바람에 나부끼며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구 지역에서 자동차에 스티커 태극기와 깃발 태극기를 처음 매단 것도 태극기 보급 선양회 사람들이다.

"처음 스티커 태극기를 붙여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스티커 태극기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다른 나라 국기를 그린 스티커는 가게마다 흔해 빠졌는데 말입니다". 태극기 보급 선양회 김희주 대구광역시 협의회 회장은 당시엔 깃발이나 스티커가 없어 서울에 주문을 하는 불편을 겪었다고 말한다.

초창기 태극기 보급 선양회 사람들은 국경일 전날 아파트 주차장을 돌며 자동차에 태극기를 매달았다.

기념일 당일엔 거리에서, 가정을 방문해 태극기를 나누어주었다.

2000년, 2001년엔 대구시내 1천여개 아파트 관리소에 태극기 홍보 팸플릿을 보내기도 했다.

단순히 태극기를 달자는 호소가 아니라 태극기의 의미, 태극기를 게양해야 하는 이유 등을 담았다.

몇 해전부터 달성공원, 두류공원, 국채보상 기념 공원 등에서 펼치기 시작한 독립운동 재현행사도 빼놓을 수 없다.

근래엔 회원들뿐만 아니라 시민들 참여가 부쩍 늘었다.

회원과 학생 등 300여명 남짓한 인원이 참가한 가운데 시작한 거리행진이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에 1천명에 이르러 가슴 벅찬 감동을 맛보기도 했다.

월드컵 땐 범어로터리에서 종이 태극기 1천여장을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회원들은 나이를 잊은 채 국채 보상공원에 모여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월드컵을 계기로 태극기가 시민들의 일상으로 성큼 다가서게 돼 선양회 사람들은 즐겁기만 하다.

태극기 보급 선양회가 처음 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 초엔 행정관청조차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인 것이다.

태극기 보급 선양회의 일은 태극기를 알리고 보급하는 데 한정돼 있지 않다.

1995년 7월 팔공산 동봉 남쪽 칠부 능선에 지맥을 끊기 위해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을 뽑고 산신제를 올렸다.

김희주 회장이 3년 동안 갓바위에서부터 제 2 석굴암까지 헤집고 다녀 찾아낸 말뚝이었다.

육관도사가 텔레비전에 출연, 염불암 뒤에 지맥을 끊는 쇠말뚝이 박혀있다고 밝힌 한 마디가 유일한 끈이었다.

1997년 8월 경주 감은사지 석탑에 우리나라 최고(最古)로 추정되는 태극도형을 확인하고 공개했던 것도 태극기 보급 선양회 사람들이었다.

환경보호, 일본 정치인의 신사참배 반대, 독도 지키기 등 국가의 생명과 자존심이 걸린 문제엔 언제나 시위를 통해 목소리를 냈다.

태극기 보급 선양회 사람들은 모두 100여명. 1980년 처음 모임을 결성한 사람부터 10여년전 가입한 사람들까지, 대체로 30대에서 60대 주부로 구성돼 있다.

선거 철이면 철새처럼 슬쩍 고개를 내미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득하지 못하다.

선거가 끝나면 온다간다 소식도 없이 연락이 끊어지기 일쑤. 100여명 회원 모두가 행사 때마다 참여하지는 못한다.

남편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공휴일 가족 나들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태선 여성 사무국장은 태극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며 특히 청년층의 참여를 기다린다고 당부했다.

태극기가 시민들 곁으로 성큼 다가왔지만 태극기 보급 선양회 사람들에겐 한가지 소망이 더 있다.

1년 중 하루를 정해 대구시 전체 자동차에 태극기를 달자는 것. 비용도 문제고 태극기를 나눠주는 방법도 문제다.

대구시와 기업의 관심이 간절하다고 선양회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문의)053-952-1432 .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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