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 녹인 '함께하는 삶'화제의 2인-임업공무원 박성열씨

입력 2003-01-08 15:59:01

"30년 공직생활 동안 자연으로부터 받은 물건들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기 위해 사회환원을 결심했습니다".

30년 동안 임업직 공무원 생활을 하며 산림과 관련된 갖가지 귀중한 자료와 역사적 생활물품을 비롯, 석기시대 돌기구 등 가치환산이 어렵지만 2억5천만원 정도로 추정되는 6천400여점을 경북도에 기증한 경북도 산림과 박성열(50.임업6급)씨.

오는 7월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에 개관예정인 경북 산림과학 박물관에 전시될 박씨의 기증자료에는 기억도 아련한, 시골 담벼락에 나붙었던 '산림보호 담화문'에서부터 일제시대 임야소유 지도, 석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돌칼과 손도끼에 이르기까지 산림에 관한한 웬만한 것들은 망라됐다.

1966년 10월 당시 내무부.농림부장관 명의로 발표된 붓글씨체의 담화문에 실린 "월동연료 채취를 기화로 도남벌 등 산림파괴 행위를 자행한 자는 오대 사회악(五大社會惡)을 제거하는 정부지침에 따라 엄단할 것"이란 문구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또 1903년 발간된 '대한제국 전답 관계(田畓官契)'에는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대치원 소재 황모씨 소유의 밭 위치에 대해 "동쪽은 길(路)이고 서쪽은 산, 남쪽은 황씨의 세밭(三田), 북쪽에는 산"이란 식으로 기록, 당시 제도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발간된 32쪽 짜리 '(경북)도정 월보' 3월호 표지에는 "백두산영봉에 태극기 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는 등 3가지의 '우리의 맹서'가 당시 전쟁상황을 잘 알려주고 있다.

또 당시 신현돈 도지사는 '춘궁기 극복에 신고(辛苦)하는 도민제위에게'란 글을 통해 "보리고개는 올해도 어기지 않고 찾아왔읍니다.

본도는 작년에 우심한 한재(旱災)로 농민들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고 도시에서는 미가(米價)가 앙등…외미(外米)를 수입해…이 험준한 고개를 무사히 넘도록 극력 노력하고 있읍니다…"라며 당시의 어려움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일제치하인 1910년에 작성된 임야도에는 지번없이 주변임야의 소유자를 기록, 소유관계를 밝혀 오늘날과 다른 임야 소유관계 표시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박씨가 기증한 100쪽에 이르는 산림관련 자료목록에는 갖가지 이름들이 나열되고 있다.

이번에 기증한 자료들을 집안 구석구석 보관하느라 부인과 적잖은 갈등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 박씨는 그동안 도청 쓰레기장을 뒤지느라 미화원들로부터 물건을 훔쳐 가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리고 괜찮은 자료가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갔고 인터넷 경매를 통해 자료를 구입하기도 했다.

지난 1973년6월 경산시 압량면 근무를 시작으로 오는 6월이면 공직 30년을 맞는 박씨는 "마음을 비우면 욕심이 없어지고 조상들이 물려 주거나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점차 사라져 안타깝다"면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바랐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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