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主 개혁파 '黨 해체' 주장 파문

입력 2002-12-23 12:19:00

민주당 개혁파 의원 23명이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측 인사들인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아니라 낡은 정치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승리"라면서 인적 청산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의 당 해체론의 핵심은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당권파들의 교체와 신당창당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해체론이 특정계파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노 당선자가 선거기간 중 천명한 당의 환골탈태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휴가중인 노 당선자에게 이 문제를 상의하고 보고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지 불과 사흘만에 노 당선자측이 당 해체를 주장하고 나서자 한화갑 대표 등 동교동 뿐 만 아니라 개혁성향 의원들까지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고 나서는 등 권력투쟁 양상으로 비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서둘러 당해체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선대위가 해체되면 당권이 한 대표와 정균환 총무 등 구 주류들에게 다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노 당선자가 주장한 정치개혁이나 집권초기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노 당선자 주변 인사들이 친위쿠데타 성격의 당해체 주장을 들고 나온 것이다.

국민적인 기대감과 명분과 힘이 있을 때 밀어부쳐야만 가능하다는 계산에서 이처럼 곧바로 당해체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들이 특히 무게를 두고 있는 부분은 인적 청산이다.

신기남 의원은 "사람의 교체가 가장 시급한 일이며 과거 인물을 그대로 두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 등 동교동계와 후단협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동교동계 등이 즉각 반발하고 나서면서 당내분이 표면화되자 노 당선자는 23일 열린 선대위 전체회의에 참석, 당개혁을 지지하고 나섰고 이에 다시 한 대표 등이 민주적 방법에 따라야 한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서면서 노 당선자측과 구주류측간의 권력투쟁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 당선자는 이날 "국민은 변화를 원하는 것 같고 물흐르듯 갔으면 한다"며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개혁파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는 "변화의 과정에서는 갈등이 있게 마련"이라면서 "(당이) 잘 적응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당의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되 당이 알아서 할 일"이라면서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 선대위회의 직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대표는 "대선에서 승리했는데 선거가 끝나고 소란스러워 유감"이라며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겠지만 민주적 절차가 필요하다"며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 대표는 "(당개혁에 대한) 개별적인 의견개진에 대해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수렴해서 기구를 출범시켜 논의할 일"이라고 말했다. 26일로 연기된 의원총회에서 이문제를 둘러싸고 격론이 예상된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 동교동 후단협 반응

민주당 개혁파 의원 23명이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하며 이른바 '기회주의적 구태정치 심판론'을 제기하고 나서자 민주당이 발칵 뒤집혔다. 개혁파 의원들의 주장이 다분히 '한화갑 대표 등 당 지도부와 동교동계, 반노(反盧) 성향의 의원 및 후단협 탈당파 의원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일단 대표격인 조순형 의원은 "동교동계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며 발을 뺐으나 "시대 흐름을 역행해서는 안된다"고 말해 동교동계를 직.간접 지칭한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특히 친노측으로부터 자진사퇴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한화갑 대표는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동교동계의 이같은 입장은 23일 오전 한 대표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간의 회동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자간 회동 결과에 대해 한 핵심 당직자는 "당 개혁특위 같은 기구를 만들어 정치개혁 방안을 만들되 제도 개혁을 먼저 추진하고 인적청산은 최소화해야 한다는데 양자간 의견접근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김원기 고문도 "당이 환골탈태 해야 하지만 당 통합을 깨지 않는 선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원칙론을 밝혔다.

그러나 일부 동교동계 의원들은 후단협 의원들과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등 심각한 기류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우리가 대선에 승리했는데도 불구, 당이 소란스러워 유감이다"며 불쾌감을 피력했다. 또 "지도부 거취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대표는 필요한 것이고 민주적 절차에 의거,(인책여부를)가려야 한다"면서 "나는 전당대회에서 두 번이나 일등했고 자리에 연연치 않겠지만 민주적 절차가 필요하다. 노 당선자를 위해 (대선 기간중)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동교동계 맡형 격인 김옥두 의원도 선대위 전체회의에 참석, 개혁파 의원들의 겨냥, "당을 깨자는 것이냐"며 반문하면서 "이번 대선 기간중 동교동계 의원들 만큼 열심히 뛴 사람이 있느냐"고 말했다.

한광옥 최고위원 역시 "절차와 단계를 거쳐 당 개혁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며 "특히 당 공식기구를 거쳐 차분히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해 전날 민주당 개혁파 의원들의 기자회견을 꼬집었다.

이와 관련, 후단협 소속 한 의원은 "친노 성향의 개혁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드셀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처럼 빨리 나올 줄 예상치 못했다"면서 "무조건 청산 대상으로 모는 시각에 대해서는 모든 방법을 동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 DJ와 단절 시동

민주당내 개혁성향 의원 23명이 22일 기자회견에서 제기한 「DJ정권 부패.실정 책임론」은 노무현 당선자와 김대중 대통령간의 향후 관계설정 양상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단초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들의 기자회견 내용중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민주당 정권의 재창출이 아니라는 것과 △김대중 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책임이 있는 세력과 인사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선에서 당선되기까지 유세나 토론회 등을 통해 「DJ정권의 부채와 자산 승계론」과 「DJ정권 실정 책임론」 사이를 오갔던 노 후보의 입장이 DJ정권과의 단절쪽으로 정리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노 후보의 당선은 민주당 정권의 재창출이 아니라는 언급은 노 당선자가 선거운동중 『노무현이 당선되면 노무현 정권』이라고 한 것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같은 분석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는 지적이다.

현재 DJ와의 관계설정과 관련해 노 당선자의 구체적인 생각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관측들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은 노 당선자가 처한 상황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노 당선자가 승리한 것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보다는 노무현 개인에 대한 지지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이는 노 당선자가 본인의 심중과는 관계없이 민주당 정권의 실정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뜻한다.

노 당선자측의 이같은 차별화 움직임에 대해 청와대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인적인 비리와 부패는 있었지만 정경유착 등 정권차원의 부패는 없었다』면서 집권여당을 함께 한 민주당이 그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측의 이같은 인식이 현재 드러난 바와 같이 민주당내 개혁파 의원들의 생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DJ정권 실정.부패론를 둘러싸고 양측간의 갈등은 내연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DJ정권의 실정과 부패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과 책임규명 요구가 여전히 살아있는 상황에서 유권자의 절반을 약간 넘는 지지를 받은 노 당선자가 순탄한 집권의 길을 가려면 말 그대로 DJ를 밟고 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 당개혁특위 구성 결론

민주당은 23일 당 개혁방안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협의해 조만간 '개혁특위' 인적 구성을 마무리 짓고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준을 받기로 했다. 문석호 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당정분리가 당정간 공식입장이긴 하나 노 당선자가 선거운동 기간중 당 개혁에 관해 여러차례 언급했고 그 의지가 확고하다고 판단, 당선자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화갑 대표와 노 당선자는 이날 오전 별도 회동을 통해 중앙당 축소, 중대선거구제 추진, 당정분리 등 정당개혁 방안에 대해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신기남 최고위원 등이 한 대표의 사퇴를 포함한 당 지도부 일괄사퇴를 요구하며 스스로 최고위원직에 물러나 민주당내 개혁방안을 두고 신.구 주류간 주도권 다툼이 치열할 전망이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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