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대선이후...-(1)TK 민심읽기

입력 2002-12-21 13:33:23

5년 전인 97년 12월18일 밤, 당시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접하던 때처 럼 2002년 12월19일 밤 다수의 대구시민과 경북도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집에서, 역대합실에서, 터미널에서, 운전하면서 듣는 라디오 소리를 통해서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접하면서 착잡한 기분을 넘어 정치적인 좌절과 상실감을 떨 치지 못했다.

소수의 민주당 지지자를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박수치는 이도 없었 다. 74.5%의 몰표를 한나라당에 몰아 줬던 대구·경북 지역민들이기에 허탈감이 좀체 가시지 않는 듯하다. 이같은 허탈감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치유돼야 하는지 를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한 번도 아니고 두번 째다. 10년전 YS를 뽑고서도 '득을 본 게 별로 없어' 배신감 에 사로잡혔던 것까지 포함한다면 세 번째다.

'예방주사' 덕분에 가슴앓이를 덜 할지 아니면 재발이라서 치유가 더 어려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적인 축제라는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지 역 분위기가 너무나 가라앉아 있다는 것이다.

축제 뒤끝에 오는 허탈감일까. 아니다. 패배의 좌절감이 그 원인이다. 미래에 대 한 불안 때문이다. 또 '5년을 더 기다리면', '다음에는 누구인가' 등을 생각해 보 지만 그 또한 불확실하다.

대구·경북의 특정 지역, 특정 계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생각이 적절한 근거를 갖고 있는지는 차치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TK는 이제 왕따당할 것'이라 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구에서는 비교적 생활 수준이나 교육수준이 평균 이상이라는 수성구 범물동의 주부 최영희(34)씨는 "주 변에서 대구가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 있어 기호 1번을 찍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 1번이 되면 대구가 살고 1번이 안되면 특히 2번이 되 면 대구가 죽는다는 말인데 맞는 말은 아니지만 이게 지역 분위기였다.

관가 특히 고위 공직자들의 걱정은 더 크다. 예외 없이 모두 1번을 찍었으니 앞 날이 답답한 것도 당연하다. 대구나 경북 별 차이가 없다. 대부분이 한나라당 소 속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표가 더 많이 나온 지역일수록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예산 확보 등 지역의 사업도 문제지만 개인적인 인사 불이익도 걱정거리다. 예전 에는 줄을 대고 로비를 할 대상도 많았지만 이제는 막막하기만 하다. 호남 우선이 라는 DJ정권 5년에 이어 다시 TK가 '별 볼 일' 없어진 5년을 더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비단 관가 뿐만 아니다. 서울에 있는 대기업체의 지역출신들도 물을 먹지나 않을 까 우려한다. 기업 오너들의 입장에서는 정권 실세와 줄이 닿을 수 있는 연고자를 우대할 수밖에 없는데 TK는 노무현 정권 탄생에 발목만 잡았지 도움을 주지 않았 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다.

한나라당이 대선 기간 광고를 통해 '여러분들의 자식들 이 걱정'이라고 지역정서를 자극한 것도 이런 점을 노린 것이다.

특히 관가에서는 중앙정부의 지원과 예산배려가 갈수록 비중이 커지지만 '정치적 고립'이나 중앙 인맥과의 단절, 정보부족 등에 따른 불이익으로 '또다른 고립'이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시장·군수·구청장 등 단체장들의 고민도 마찬가지. 특히 이회창 후보의 당선에 기대를 걸었던 익명을 요구한 한 단체장은 "현재 추진중인 각종 사업들이 국비확 보 문제 등으로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털 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합론과 지방분권 공약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 으로 일말의 기대를 거는 눈치다.

관가나 대기업의 우려가 이 정도이니 지역의 다른 분야의 생각도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수(38·여)씨는 "의사들은 DJ정권 의 무리한 의약분업 시행으로 돈문제만이 아니라 자존심도 완전히 구겨졌는데 다 시 5년을 참고 견뎌야 한다"며 "사실 일할 맛이 안난다"고 했다.

이런 생각은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현 정권의 교육정책 실패를 주장 하는 교사들도 비슷하게 갖는 것이다. 정년 65세가 3년 줄었으니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곰곰이 돌이켜보면 다른 곳도 아닌 대구 출신인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 에도 대구·경북은 쇠퇴 일로를 걸었고 YS정권에서도 그 추세는 멈추지 않았다. D J 정권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DJ 정권에서는 동서화합을 기치로 지역 현안에 대한 예산 지원은 YS 때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때문에 그 책임을 모두 DJ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 이전까지 집권했음에도 돌파구 를 찾지 못했던 한나라당의 책임 회피라는 것이 민주당 대구선대본부 김학기 정책 실장의 주장이다.

김 실장은 "일반인들의 '대구·경북은 2번이 되면 다 죽는다'는 사고는 기득권 상 실을 우려한 대구·경북 일부 계층의 이데올로기가 너무 광범위하게 전파돼 있기 때문"이라며 "누가 집권한다고 특정 지역이 더 발전하고 다른 곳이 더 낙후될 것 이라는 생각은 이제부터라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꼬집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잘 나가던 극소수 지역출신 인사들이 YS와 DJ 정권 들어 줄줄이 '물'을 먹으면서 그에 대한 불만들이 교묘하게 지역에서 야당의 선전 논리로 정착됐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중산층과 일반 서민들의 삶에는 정권 의 향배가 별 영향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영남대 김태일 교수는 "이유야 어찌됐든 그리고 배경이 무엇이든 분명히 서문시장 상인들의 낙담처럼 시민들의 좌절감이 광범위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같 은 좌절감과 상실감은 단기간에 치유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대책도 시간을 두 고 고민하고 난 뒤에 얻는 것이라야 영속성을 갖는다"고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처 방을 주문했다. 그는 이어 "단기적으로 예산을 더 많이 배정해 준다고 해도 약발 은 오래 가지 않으며 그것이 끝나면 또 돌아설 가능성도 많다"고 덧붙였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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