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대-사분오열서 사통오합으로

입력 2002-12-19 00:00:00

오늘은 16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21세기 들어 첫 대선인 만큼 선거과정과 선거결과는 앞으로의 우리 역사 전개에 막중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희망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이번 선거까지 54년간 선출방법이야 어떻든 우리국민은 16번이나 대통령을 뽑아왔다. 평균 3년 5개월마다 새 대통령이 나왔다. 선거부정 등 결정적 흠이 있어 당선 때부터 정통성 시비에 시달린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별의별 대통령의 등장과 퇴장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1945년 해방 이후 57년 동안 우리 민족은 한반도에서 세계사에 나타난 정치.사회.경제 사상에 터잡은 온갖 정부형태를 초압축적으로 체험했다. 마치 세계 최첨단을 가는 한국산 반도체 칩에 백과사전 수십권을 입력해 버리듯이 말이다. 민주.자본.보수.진보.공산왕조.민중.전자정보화 정부 등등.

혁명은 하도 많은 혁명을 외쳐왔고 전쟁도 열전(熱戰).냉전에서부터 범죄와의 전쟁, 교통 전쟁까지 끝도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언론과의 전쟁마저 등장하는 촌극도 있었다. 개혁과 투쟁으로는 맛이 떨어져 무슨 혁명, 무슨 전쟁이라고 해야 약간의 관심이라도 끌 수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사정이 이런 만큼 우리 사회에는 갈등과 충돌의 요소들이 가마솥에서 펄펄 들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폭발성을 내재한 갈등요인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가마솥의 뚜껑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대권을 노리는 후보와 그 정치세력들에 의해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상대후보의 가열찬 대응을 불러와 갈등은 한층 더 상승기류를 탄다. 갈등의 확대재생산 구조가 작동한다. 도대체 50년이 넘는 장년국가에서 국가의 기본틀인 헌법에서조차, 안보의 근간인 대(對) 미국과 대(對)북한 정책에서도 합일되는 사항을 찾기 어렵다.

대선 국면에서 조망하면 한반도의 남쪽은 그야말로 사분오열(四分五裂), 아니 팔분십열(八分十裂)의 모습 바로 그대로다. 사분오열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분열과 갈등이 보다 더 적대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상의 토론방을 보라. 그 험악한 용어들은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유력후보들의 선거홍보에서도 적대적 언사를 자제하지 않는다.

서양식 민주정치 이론에서는 사회의 갈등과 불만요인 등이 선거라는 대중참여 절차를 통해 정리되고 여과된다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시대 한반도에서는 이 이론이 맞다고 하기 어렵다.우리가 자라면서 예독했던 나관중의 삼국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합구필분(合久必分:합이 오래가면 나뉘어짐)하고 구분필합(分久必合:나뉨이 오래가면 합쳐짐)이라고.

다음 정부의 새 지도자, 16대 대통령은 우리의 20세기 후반 현대사의 성취와 굴절을 딛고 21세기 미래를 밝게 펼쳐야 한다. 우리는 새 지도자와 함께 이제 분열을 추스르고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선거가 막을 내리고 승자의 축제만 있다면 사분오열에서 사통오합(四統五合)으로 방향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선거의 패자가 정치의 패자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선거의 승자가 평균 재임 3.3년 후에는 정치의 패자로 낙인찍혀 술자리의 안주거리가 된 사례가 너무나 많다.

대구.경북지역은 정권태동의 산실이 되기도 했고, 정권의 정반대편에 서기도 했다. 헤겔의 변증법에 따르면 정(正), 반(反)의 단계를 거쳐 합(合)의 단계에 와있다. 지조와 원칙을 지켜온 대구.경북 사람들이 분열을 털어내면 온나라가 통합의 길로 인도될 것이다.

조선조 500년을 통틀어 이른바 성군(聖君)이나 명군(明君)이 몇이나 있었던가. 몇백년에 한, 둘의 성군이나 재상 등 큰 인물이 등장했을 뿐이다. 이제 겨우 50여년 선거정치사에서 선거 때마다 훌륭한 대통령이 나올 수는 없다. 선거 끝나고 새 정부 들어서서 조금 지나면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는 소리가 나오곤한다.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도자나 그 세력만으로는 역사를 움직이기 어렵다. 결국 선거로 뽑힌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환상부터 버려야 역사가 바로 선다.깨어있고 건강한 국민 다수가 새 역사를 만든다. 이제 사분오열을 접고 사통오합의 기치를 높이자.

이경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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