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고 세상읽기-하와이 한인 100년

입력 2002-11-27 15:13:00

내년은 한국인이 최초로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이주하기 시작한 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들노동자들의 뒤를 따라 '사진신부'(picture bride)들이 도착하여 이들의 2세, 3세 후손들이 오늘의 하와이 한인 사회를 이루었음은 물론 미국 본토를 비롯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이민사 내지 민족이동사는 한반도에만 갇혀 살던 한국인이 최초로 서양세계로 진출하여 세계 속의 한민족공동체를 이룬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들은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 살면서 일본 제국주의에 주권을 상실해가는 조국의 운명을 아파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독립운동을 지원하였고, 이승만, 박용만 등 많은 애국지사와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윤치호같은 인물도 1905년 하와이를 방문하여 한국인 노동자들을격려한 바 있고, 현순목사도 '포와유람기'(布蛙遊覽記)를 출간하여 당시 상황을 잘 기록해 주고 있다.

나는 한국인들이 내년에는 하와이로 한번 여행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하와이는 세계적으로가장 유명한 관광휴양지로 이미 다녀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각별한 뜻으로, 역사의식을 갖고 다시한번 다녀오기를 바란다. 와이키키나 골프장이 아니라 다음 두 군데를 명심하고 돌아보고 오기를 권하고 싶다.

첫째는 와이파후 농장마을(Waipahu Plantation Village)인데, 이곳이 바로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온 선조들이 살던 곳으로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시켜 놓았다. 내년에 이곳에 기념비가 하나 설 것으로 기대하는데, 해외 한민족공동체가 얼마나 어려운 역경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와이 한인회에서 낸'그들의 발자취'(Their Footsteps)라는 사진집을 보면 그들의 삶이 오늘의 풍요로운 우리들에게 얼마나 무서운 교훈을 주는지 잘 볼 수 있다.

둘째는 하와이대학 안에 우뚝 서 있는 한국학연구소(Center for Korean Studies)이다. 한국인 관광코스에는 이곳이 잘 포함되지 않지만, 사실 한국인에게는 단순한 관광만으로도 이것은 볼 만한 건물이다.

경복궁의 경회루(慶會樓)와예산의 수덕사(修德寺)를 합친 건물에다 향원정(香園亭)을 모방한 팔각정까지 갖춘 전통 한국건물이 외국대학 캠퍼스에 웅장히 서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하버드, 베를린, 파리, 런던에도 한국학연구소들은 있지만 이런 위용있는 건물은 아무데도 없다.

물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용단으로 세운 위업의 하나인데, 설립 때는 다소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얼마나 자랑스럽게 이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도 세계 여러 대학을 다녀 보았지만 이 연구소만큼 쾌적한 환경 속에서 한국학을 연구할 수 있는 곳은 보지 못하였다. 우리가 해외의 한국학에 대해 중요성을 많이 얘기하는데, 한국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좀 알고 싶다면 이곳을 가보면 제일 좋다.

약간 학술적 얘기로 되었지만, 하와이는 뭐니뭐니해도 아름다운 자연풍경이다. 바다와 하늘이 구별 없는 망망대해 태평양 한 가운데 서 있는 동서양의 중간, 공항에서부터 꽃목걸이를 선사받고 사시장철 각종 꽃들이 피어있는 지상낙원 같은 곳이다.

나는 1년간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바다와 꽃나무 등 자연에 매료되어 1백편이 넘는 시를 쓰게 되었다. 이를 '플루메리아 바람개비'(1999)라는시집으로 묶어 그곳의 한인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준 일도 있다. 이승만도 그곳에서 시를 썼고, 박용만장군도 시를 썼다. 시가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한인 이주 백년을 맞는 하와이, 내년에는 만사를 제치고라도 내 고향 상주 친구들과 함께 다시 가고픈 생각에 부풀어있다. 바쁜 일상생활에서며칠 떠나 먼지 한점 없는 자연 속에서 지친 심신을 일신하는 것도 인생의 낭만이거니와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는 것도 삶의 보람이라 할 것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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