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휴머니즘의 불씨

입력 2002-11-25 14:34:00

생명을 마쳐 가는 별처럼 거의 빛을 잃은 말을 찾는다면, 요즘은 아무래도'휴머니즘 '을 꼽아야 하겠다. 이윤추구가 지상의 과제요 최고의 미덕으로추앙되는 세상에서 종교마저 물량주의의 최정상을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세상에서 휴머니즘 어쩌고저쩌고 떠들어 봤자, 귀신 씨나락 까먹는 헛소리를 떠들고있다는 지청구와 손가락질이나 돌려받을 것이다.

하긴 뭐 이 나라의 작가들도 흘러간 옛 노래의 기억보다 아련하고 희미한지 좀처럼 휴머니즘을 발언하지 않고 있다.이런 현상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사회체제의 관계에 대한 질문과 성찰과 고뇌가 빈곤해졌다는 반증이다.

그것이 없는 사회에선 휴머니즘이 존재할 수 없는 반면에, 자기 재주껏 해먹으면서 자기 능력껏 살아가면 된다는 가치관이 구성원들의 머리에 아카시아나무의 뿌리와 같은 상식으로 자리잡을 테고, 물질적 풍요와 과학기술의 혜택이 인간다운 삶의 수준을 측정할 때의 기준으로 통용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를 유지시키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어떠할까? 이윤추구의 도구로서의 인간들이 득실거리고, 철저한 이해관계가 인간관계를 결정짓는다.이해관계가 종결되는 순간에 실질적인 인간관계까지 깨끗이 청산되면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슬퍼하거나 분노할 이유가 연기처럼 사라지게 된다. 바로 여기를 '상업주의의 유토피아'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겠다.

그렇다면 지금은 '인간적인 슬픔과 인간적인 분노'가 '상업주의의 유토피아'를 저지하기 위한 '공공의 자산'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인간적인 슬픔이있어야 연민이 나오고 연민은 각성의 자극제이며, 인간적인 분노가 있어야 연대가 이루어지고 연대는 변혁의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이 휴머니즘의 불씨인 것이다. 아, 생태주의를 앞세워 이런 휴머니즘 타령을 '인간 이기주의'쯤으로 오해하지 말라! 생태계와 지구를 위협하는 가장 막강하고 잔인한 세력은 인간의 소비욕망을 무한대까지 부추기며 상업주의를 모든 가치 위에 독재자로 군림시키는 현 체제이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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