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불가침조약은 기만전술일 뿐이다

입력 2002-10-26 14:35:00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25일 담화는 이번 핵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 하는 종이 쪽지나 다름없다. 우리는 북한이 첫 공식반응에서 합리적이고 진전된 사태수습 방안을 제시해주길 기대했으나, 그런 희망이 역시 과욕(過慾)이었음을 확인케 됐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제8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얼버무려놓고, 갑자기 미국과 거래를 시도한 것은 선의(善意)를 악의(惡意)로 갚는 행동이 아닌가 한다. 자주적(自主的) 파트너 운운한 그동안의 언급들이 입발림이었음을 증명해준 것이다.

그런 북한의 실체를 외면한 우리 정부 또한 빈 껍데기 수습방안이 있게 한 공범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이하고 감상적인 대북교섭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은 이번 담화에서 '선(先) 핵 포기'를 거부하며 미국과의 불가침조약을 핵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미국이 선제공격 등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해주면 핵 문제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용도 폐기된 핵 카드를 은근슬쩍 협상의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핵무기 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협박까지 곁들이면서.

우리는 이번 북한의 제안과 관련, 불가침조약을 논의하거나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북한의 미·북(美·北) 불가침조약을 선의로 해석하면 남·북(南·北) 불가침조약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가 없어지면, 남북 적대관계가 자동적으로 소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의에는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미·북의 불가침조약은 6·25 정전협정을 대신하게 된다.

이는 정전협정에 근거한 주한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 더 나아가 주한미군의 존속근거를 앗아간다. 다시 말해 한미안보협정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우리로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제안인 것이다.

북한의 의도는 한·미 관계의 틈새를 파고들어 북한의 안보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다른 한 손에 체제보장 및 경제적 이익을 챙기려는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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