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신세대주부 유감

입력 2002-10-24 14:33:00

신세대 주부는 90년대를 전후하여 급격히 증가한 고등교육의 수혜를 받아서 교양과 부를 두루 갖춘 도시 중산층의 전업주부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의 경우 학벌 좋은 전문직 남편의 수입만으로도 가계를 꾸리는데 문제가 없으므로 경제적 자립은 이들의 목표가 아니다.

이들은 TV나 광고, 여성잡지, 친구들로부터 소비의 교리로 개종하도록 부단한 부추김을 받는다. 그들은 남편의 신용카드를 들고 백화점, 쇼핑센터로 끊임없는 소비의 순례여행을 즐기며, 소위 명품을 구매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가족을 틀지우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과시적 소비는 이들의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시켜주긴 하지만 절대로 완전한 만족을 주지는 않음으로써 그들을 헌신적인 추종자로 만든다. 이 신흥종교는 변화하는 여성의 지위와 새로운 소비적 자아를 '여성해방'의 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해주며, 게다가 신세대 여성의 삶 속에 새로이 생겨난 갈등에 대한 그럴싸한 해답까지 제공해준다.

신세대 주부가 영위하는 가정은 더 이상 자급자족하는 가족공동체가 아니며 흔히들 믿고 있는 통념과는 달리 전통을 보존하는 곳도 아니다. 신세대 주부들은 가정을 가족의 소비능력을 과시하는 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부엌은 전자 취사기구와 오븐, 대형 냉장고, 식기세척기, 고급접시와 그릇들로 눈부시게 반짝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재료를 사다가 직접 손으로 요리하는 것을 싫어한다. 가족을 위한 특별한 식사는 외식이고, 손님들은 요리사를 불러서 대접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고급레스토랑에서 접대를 한다.

그들은 집안의 전통적인 음식조리 기술을 배우려는 노력은 하지도 않으며 라면, 피자, 햄버거 같은 즉석식품으로 아이들의 입맛을 길들인다.신세대 주부들은 가족의 식사를 위해서는 전자 취사기구의 스위치를 누르거나 미리 손질되거나 가공된 식품을 조리하며, 가족의 빨래나 바느질, 다림질은 세탁소에 맡기고,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는 영어학원, 속셈학원, 미술학원, 피아노학원에 등록한다.

이런 신세대 주부가 자신에게, 나아가 가족에게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의미와 필요성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 남편이 벌어온 돈을 쓰는 소비자로서의 주부의 역할은 아무 여성이나대신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신세대 남편들이 가만있는 것은 '여성해방'의 거센 바람에 주눅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가족을 위한 주부의 역할을 가늠할 능력이 증발해서일까?

노진철(경북대 교수.사회학)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