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재판' 목 빠진다

입력 2002-10-17 00:00:00

법원이 법을 위반하고 있다. 법정 재판기간 안에 재판을 끝내지 못한 장기 미제사건이 갈수록 누적되고 있다. 이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국민들의 '신속하게 재판 받을 권리'가 침해 받고 있다.

◇재판 받는데 목 빠진다=지난 6월 기준 대구지방법원 민사본안 사건 중 소송 제기 후 1년 이상을 넘긴 장기 미제사건은 무려 2천35건. 그 중에는 2년이 지난 것도 298건에 이른다.

대구지법의 장기 미제사건은 다른 지법에 비해서도 유달리 많은 편이다. 부산지법은 1천57건(2년 이상 183건), 인천지법은 1천18건(〃 91건), 대전지법은 888건(〃171건)을 안고 있다. 판결은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한다는 민사소송법 규정을 법원 스스로 어긴 셈.

형사사건에서도 법정 재판기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는 마찬가지. 지난해 대구지법이 처리한 1심 형사단독 사건 중 판결선고 법정기간(6개월)을 넘긴 것은 전체 2만117건 중 23%인 4천629건에 달했다. 합의사건에서는 2.9%(전체 1천829건 중 54건)가 그런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고법 역시 지난해 심리한 민사본안 사건 중 기간을 넘긴 미제사건은 482건이나 됐다. 그 중 소 제기 후 1년 이상된 사건이 125건, 2년 넘은 사건이 6건이었다◇고질화된 미제 문제=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 받는 것은 전국 법원에 공통된 현상인데다, 장기 미제사건은 갈수록 쌓이고 있어 문제가 더 심각하다.

대법원에 따르면 법정 판결선고 기간을 초과한 전국의 사건 수는 2000년보다 2001년에 12%나 증가했다. 이 때문에 2001년의 민사본안 사건 판결선고 평균 기간은 1심 합의심 9.1개월, 1심 단독심 6.5개월, 고법 항소심 10.2개월, 상고심 합의심 5.5개월 등으로 나타났다. 평균치가 법정 5개월을 훨씬 넘어선 것.

2001년엔 행정소송도 지연 처리된 경우가 1심 67%, 항소심 82%, 상고심 45%에 이르렀다.재야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이 판결선고 기간을 어기는 것은 위법적일 뿐 아니라 스스로 금과옥조시 하는 법을 앞장 서 사문화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무엇보다 판사 부족이 큰 원인다.법관 정원이 28명인 대구고법 경우 6월말 현재 법관은 18명에 불과해 결원율이 35.7%에 이르렀다.

이 결원율은 2000년 말 50%, 2001년 말 39.3%에 비해 그나마 개선된 것이지만, 전국에서 결원율이 30% 이상 이르는 법원은 특허법원 외엔 대구고법이 유일하다. 대구지법 역시 올 6월 기준 법관 정원 139명 중 15명이 배치되지 않아 결원율이 10.7%에 달했다.

◇재판 부실 우려=때문에 우리나라 법관들의 업무 부담은 가히 살인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대구지법의 법관 1인당 한 해 사건 부담 건수는 927건, 처리 건수는 538건에 이르러 공휴일까지 포함해도 하루 2.5건꼴로 사건을 분석.검토하고 1.5건꼴로 판결해야 하는 것.

한 중진 판사는 "집에 가서 일을 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으면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오겠느냐고 주위에서 오해할까 봐 일이 많다고 솔직히 드러내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법관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대법원은 2005년까지 2천74명 충원을 목표로 매년 법관 정원을 4%씩 늘리고 있다. 그러나 사건 증가율이 6%에 이르러 법관 부족현상은 되레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구고법 한 관계자는 "대법원에 계속해서 법관 증원을 요청해 2000년 결원율 보다는 사정이 다소 나아졌으나 아직도 법관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