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시대-(중)허술한 보안

입력 2002-10-15 15:29:00

일반인들은 단순하지만 범죄인들은 지능적이다. 가족단위로 여럿이 함께 사는 경우엔 그 집단성이 범죄인의 지능성도 경계할 수 있겠지만, 혼자 사는 원룸에선 그런 걸 기대하기 힘들다. 범죄인들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런 취약성임이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혼자사는 여성에게 이웃이나 집주인을 가장해 환한 대낮에까지 "전기요금 고지서를 전해주러 왔다"는 등의 말로 접근하면 쉽게 문을 열어 주게 돼 피해로 연결된다.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이 새벽 귀가 후 야식을 시켜 먹는 일이 있는 점을 악용, 배달원을 가장해 집 안에 침입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학가 주변에선 배달원이 여성 혼자 사는 것을 확인한 뒤 나중에 침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경산 영남대 부근 원룸에 사는 최모(20·여)씨는 "음식 배달원에게 화를 당했다거나 여대생 혼자 사는 것을 눈여겨 봐뒀다가 그 후 침입한 괴한에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를 몇차례 들은 적 있다"고 했다.

모두가 고립돼 살지만, 원룸에는 아파트와 달리 관리인이나 경비원이 없어 외부침입에 대한 대비가 거의 없는 실정인 것이다. 대구 수성경찰서 박봉수 형사계장은 "원룸 경우 외부 출입문이 개방돼 있고 경비원이 없기 때문에 낯선 사람에겐 문을 열지 않거나 보조 자물쇠를 건 뒤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근본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그걸 덮어 줄만큼 공공 치안력은 보완되지 못하고 있다. 원룸 주민 양모(41·달서구 본리동)씨는 "주민들이 방범초소 설치를 경찰에 여러차례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자체 보안장치 설치를 오히려 권하더라"고 말했다.

김모(40·여·〃)씨는 "옆집에서 다투는 소리가 나도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나중에 오히려 해코지 당할까 봐 신고를 못한다"며 "위급할 때 연락할 수 있는 비상벨을 원룸지역 곳곳에 설치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원룸촌 마다 방범초소를 설치하기는 불가능해 현재로선 순찰 강화 외엔 다른 대응 방법이 없다"며, "이웃간 비상벨 설치나 자위 방범대 구성 등 주민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탓인지 대구시 달서구 본리동 원룸지역 주민들은 주민자율방범대 조직을 만들어 자체 야간 순찰을 실시키로 했다고 전했다.

갖가지 취약성을 보완하려면 침입자에 대항하는 방범 장치라도 보강돼야 하겠지만, 원룸들은 이 부분에서도 오히려 일반 주택보다 더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인경비 시스템을 갖춘 곳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방범창도 마찬가지였다.

김진식 건축사는 "건축법상 원룸 공사 중에는 방범창도 설치하지 못하게 돼 있어 준공 후 임의적으로 나사못 등을 이용해 가설하다보니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모(52·여·대구 상인동)씨는 "허술한 방범창조차 대부분 1층에만 설치돼 있다"고 했다. 원룸 1층에 사는 최모(37·여·대구 본리동)씨는 "두달 전 바로 위층에 흉기를 든 강도가 이틀 연속으로 침입한 일이 있었다"고 두려워 했다. 설치에만 급급해 가스관, 냉방기 설치대, 창문턱 등이 외부로 드러나 침입을 쉽게 돕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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