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자식 "없으면 그만이다"

입력 2002-09-26 15:31:00

조선조의 인구를 보면 국가경쟁력이나 전쟁수행능력 수준이 어느정도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구 500만명을 넘어선 시점은 선조 39년(1606년)이었다고 한다. 태종 4년(1404년) 4월에 실시했다는 호구조사결과 조선8도(道) 인구는 150만명 정도였다니 200년간 기껏 350만명이 불어났다.

이 기간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1.37%였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걱정한 인구폭발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일부 조선조 유학자(儒學者)가 주장한 '십만양병(十萬養兵)'은 당시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분석에 수긍도 가는 대목이다.

상황은 해방 이후 급변한다. 이때 남한 인구가 1천600여만명, 300년전의 인구에 비해 1천100여만명, 3배 이상이 불어났다. 영국 경제학자 맬더스의 인구론을 떠올려야 할 만큼 인구폭발시대의 돌입이다. 30년후인 1975년 남한인구가 3천500여만명, 연간 평균 60여만명씩 늘어났으며 2002년 지금 국내 총인구수는 4천700여만명으로 30년전과 대비(對比)할 경우 1천200여만명이 불었다.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우려한 인구증가현상도 2023년쯤 가면 전체인구가 감소한다는 전망이다. 인구증가율이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계청의 판단은 인구증가율이 지난 2000년 0.71%에서 2010년 0.38%, 2020년에 0.04%로 떨어지다가 2023년에는 출생률과 사망률이 같아져 0%가 된다는 것이다.그 후부터는 감소세로 돌아서 2050년에는 -1.04% 수준까지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고 보면 인구감소, 출산저하에 따른 부작용 등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인구가 줄어들만큼 여성들의 출산기피는 우리사회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인지도 모른다. 지금껏 사회를 지배한 남성들의 책임이 크다. 사는 것이 힘들면 출산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데도 무신경, 무배려로 넘긴 결과로 볼 수 있다. 출산의 고통, 자녀양육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내팽개친 사회적 분위기는 "자식이 없으면 그만이다", "정 필요하면 하나만 낳아 기르겠다"는 여성이 늘어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또 보자. 고용, 승진, 근로조건의 남녀차별적 관행이 출산율 저하를 부르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사실 노동현장에서 법으로 정해진 출산휴가 3개월을여성근로자들이 찾아 먹기란 지극히 힘들다. 결혼하면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결혼 퇴직제'가 아직도 여성들에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 판에 그것은 언감생심이다.결혼후에도 어렵게 직장을 다닌다고 해도 아기 출산과 동시에 직장을 떠나야 한다. 여기에다 고용이나 승진에 차별을 두는 한국적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한 여성들에게 출산장려는 별무효과일 것이다.

탁아기능도 문제다. 선진국 수준에 비하면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덮어두었다고 해도 관언이 아닐성싶다. 0~2세 영유아 수탁률(受託率)이 7.6%, 3~5세의 경우 49.9%로 선진국의 각각 30%, 80% 수준에 크게 뒤지고 젖을 줄 수 있는 공간을 갖춘 기업체도 거의 없다. 이처럼 여성들의 사회참여나 활동에 걸림돌이 존재하는 한 출산율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알다시피 출산율 저하는 여러측면에서 우려할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은 줄고 노령층의 비율은 늘어난다는 데 있다. 생산활동인구가 줄기 때문에 결국 국가경쟁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특히 15~64세의 노동력 있는 인구가 줄어들고 인구 고령화로 가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돼 강대국은커녕 먹고 사는 평범한 생활영위도 어려워질 수 있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노동이나 생산활동인구 감소를 상쇄하려면 방법은 노동의 질을 높여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강도로 보거나 외국의 실정을 감안해보면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아무래도 '출산이 국력'이라는 캠페인 전개 등이 필요한 상황이 왔는가 싶다. 프랑스는 인구증가를 국력신장의 주요 지표(指票)로 삼는다고 한다. 지난 100여년간 독일에게 5차례나 침략당한 근본원인을 인구감소에 있다고 본 정책이다. 프랑스가 펴는 출산장려 방안으로 가족수당, 교육비, 의료비까지 국가서 지원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고학력여성의 출산독려와 함께 '세자녀 갖기운동'도 펼 만큼 적극적인 대응이다. 정부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하고 사회전체의 관심과 진단도 필요하다. 전문적인 육아서비스체계 확립과 남편의 육아휴가제도 도입도 검토해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의 뛰어난 자원인 인력의 감소에 대한 대응책은 바로 국가경쟁력 제고 방안이다.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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