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화백 대구서 개인전

입력 2002-09-12 14:06:00

"지난날 저는 '앞에 가는 똥차 비키시오'하고 선배를 향해 소리쳤는데, 요즘 똑같은 얘기가 내게 되돌아 옵니다. 근데 난 아무리 비켜서라 소리쳐도 그럴 의향이 없습니다. 자신 있거든 추월해 가시구려".'한국추상미술의 대부' '한국 현대미술운동의 기수' 등 온갖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박서보(72). 10일 자신의 개인전을 위해 대구에 온 그는젊은이보다 더한 패기와 열정을 보여줬다.

"아직까지 나를 능가할 만한 재목이 안보여요. 요즘 젊은이들은 쉽게 작업하고 간편성만 추구할 뿐, 작품에 온몸을 던지려는 마음이 부족해요.화가란 평생 머리는 물론이고,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뭔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얼핏 칠순 넘은 나이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나타내는 게 아닌가 했지만, 2시간 가까이 그의 얘기를 듣고나니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에 가본 미술관계자들은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 나이에도 매일 5, 6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업실에서 '펄펄 날아다닐 정도로' 정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

그의 작업과정도 지난하기 짝이 없다. 그의 전매특허로 한지나 캔버스에 연필로 그린 것처럼 긋는 '묘법(描法)'은 웬만한 노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노동집약적 작업이다. 한지를 침이나 물에 발라 자르고 오랫동안 물에 담가둔 후 연필 심으로 수천, 수만번의 선을 긋고 또 그어 골을 세우고 작품을 완성한다.

"연필을 긋는 행위는 예전 선비들처럼 붓글씨를 쓰거나 사군자를 치는 끝없는 반복 속에서 자신을 가다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때문에 그는 현대미술의 첨단을 달리면서도 한국적 미감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 한해 8차례 개인전(해외전 2차례 포함)을 가졌거나 열 계획인 그는 "칠순이 넘어서야 더 잘 풀리는 게 내 운세"라며 더욱 왕성한 활동을 기대해달라고 했다. 10월5일까지 시공갤러리(053-426-6007).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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