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선뜻 표를 끊기까지 몹시 고민스러워졌다. 행복한 고민이지만 '액션을 보자니 멜로가 아쉽고, 멜로를 보자니 코믹이 아쉬운 탓'이랄까. 요즘처럼 장르 구분이 모호한 경우엔 더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 정말 볼 만하다. 밝으면서 유치하지 않고,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다는 이유로.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 (축구영화는 아니고, 베컴도 안 나온다).
며칠전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Bend it like Beckham)을 극장에서 봤을 때 관객은 고작 12명이었다. 평일이라지만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텅빈 객석을 보며 '잘못 들어왔구나'싶었지만, 12사도가 된 기분으로 2시간을 겸허하게 바치기로 했다. 하지만 까무잡잡한 여주인공 '제스'는 우울한 예감을 속시원하게 차던져 버렸고, 관객의 눈과 귀를 빠져들게했다.
영국내 인도계 소녀 제스는 언니처럼 결혼에 목매고 싶지도, 친구들처럼 남자의 벗은 몸에 푹 빠지고 싶지도 않다. 대신 그녀의 방엔 축구선수 베컴의 사진으로 도배돼있고, 관심은 온통 축구에 미쳐있다. 관중이 아니라, 선수로서.
이국땅에 소수민족, 엄격한 힌두교 집안의 딸인 제스를 가로막는 벽은 높고 단단하다. 공원에서 남자들과 축구하는 그녀를 본 영국소녀 '줄스'는 함께 축구선수로 뛸 것을 권유하고, 제스는 자신을 둘러싼 관습과 꿈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영화의 원제 'Bend it like Beckham'은 '베컴처럼 휘어차라'는 뜻이지만, 주인공 제스와 줄스가 차 날리는 것은 비단 축구공만이 아니다. "여자가 축구를 해서 뭐하니?" "스파이스 걸스 멤버 중에 선머슴 같은 애만 애인이 없는 게 왠줄 아느냐"는 부모님의 편견, 둘을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어둡지 않다. 둘은 서로의 공통된 고민을 통해, '비주류'로서의 서로를 아끼고 감싼다. 제스는 부끄러워하던 다리의 화상흉터를 짧은 축구유니폼을 입고 거리낌없이 드러내놓는다.
영화는 쾌활하고 유머러스하다. 부엌 조리대 뒤에서 무릎으로 감자며, 양배추를 축구공인 양 연습하는 모습이나, 제스의 남자친구가 실은 "베컴을 선수 이상으로 좋아한다"는 고백을 할 때 객석은 웃음으로 가득해진다. 영화는 메시지와 오락을 균형감있게 버무려 놓을 줄 안다.
언니의 결혼식날, 어렵게 아버지의 허락을 얻은 제스가 결승전에서 역전골을 넣는 모습과 결혼식장이 인도의 전통 춤과 음악에 실려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교차편집은 영화보는 쾌감을 더한다.
다만 축구코치 조를 사이에 두고, 제스와 줄스가 신경전을 벌이고, 함께 우승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런 화해의 포옹을 하는 것은 식상한 전개같다. 딸과의 교제를 반대하던 제스의 아버지가 조와 함께 크리켓 경기를 하는 엔딩은 너무 쉽게 풀어간 것 같아 아쉽다.
'슈팅 라이크 베컴'은 인도 여성 감독 거린다 차다의 작품으로 지난 4월 영국에서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지난 7월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한일극장, MMC만경관, 메가박스 상영.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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