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1년-(5)美 입국정책 변화

입력 2002-09-07 14:48:00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이민정책에서 나타났다. 미국은 모든 외국인의 합법적 신분 여부를 이민국에 조회하거나 사회보장(Social Security) 번호 발급 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보통 6개월 체류가 가능했던 관광비자의 체류기간도 1개월로 제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러한 행정적 규제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무고한' 아랍계 혹은 이슬람교도 등 소수민족이 겪는 인종증오 범죄로 피해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계 시크교도인 수크발 싱 소디가(家)의 비극이 대표적인 사례다. 9.11 테러 직후 시크교도인 동생 발비르(49)가 검은 터번을 둘렀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오인돼 피닉스에서 살해됐다.

이어 지난 8월4일 새벽 4시 택시운전사인 형도 샌프란시스코 인근 달리에서 괴한들의 무차별 총격에 절명했다. 유타주 허버에서는 지난 7월 파키스탄 출신 마자르 타베시 씨가 운영하는 모텔에 인종혐오자들이 침입해 불을 지르는 바람에 10만달러의 재산피해를 입었다.이 같은 범죄는 극소수 인종혐오주의자들이 저질렀지만 테러 이후 미국인들의 기류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 강행으로 연결되면서 최근에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포함한 전체 아랍권까지 적대시하는 분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랍계의 괴로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연방사회보장국(SSA)은 테러관련국으로 지목된 이란, 이라크, 수단, 리비아인의 경우 예외없이 직접 신원조회를 하도록 했다. 그외 국가 출신 외국인도 컴퓨터 자료를 통한 1차 조회에서 합법적 신분이 불명확할 경우 이민귀화국(INS)에 2차조사를 신청하도록 하는 등 압박하고 있다.

미국 비자 신청자에 대한 인터뷰 의무화와 함께 운전면허 발급과 은행 계좌개설 때 제시해야 하는 사회보장번호는 해외근무자의 배우자 등 가족도 발급대상에서 제외했다.달라진 미국사회 분위기로 인해 상당수 이민자들은 영주권을 포기하고 대신 시민권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INS 통계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와 오렌지, 리버사이드, 샌버나디노, 벤투라 카운티 등 남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한국계 교민들의 경우 올 한해동안 3천명이 시민권을 얻어 지난 해 2천516명보다 19.2%가 급증했다.

박계영 UCLA대 교수(사회학)는 "테러 여파는 중동계부터 서남아시아계까지 경계 대상이 확대되면서 미국내 정치적 파워가 빈약한 전체 아시아계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하고 "합법적 단기 체류자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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