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휴게소에서 원산까지는 89㎞였다. 1시간 채 못 달려 원산 시내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오가며 길거리에서 삼삼오오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지은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오래된 건물들만 보였다. 원산 시내를 한 번 밟아보자는 욕심에 안내원에게 "카메라 배터리와 필름을 사야겠다"며 쉬어가자고 제의했다.
여관이라는 간판이 내걸린 곳에 내려 안내원과 함께 큰 상점에 들렀다. 한낮인데도 실내가 어두침침했다. 절전책으로 단전을 실시하는 바람에 큰 상점인데도 불이 들어오지 않아 그렇다고 안내원이 설명했다. 손님도 거의 없었다. 한복차림의 20대 여성 2명이 손님을 맞이했으나 친절한 기색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아 불쾌한 감정이 생겼다.
카메라를 보이며 배터리를 찾는다고 하자 "그런건 없다"고 퉁명스레 대꾸했다. 할 수 없이 호주에서보다 배나 더 주고 필름 2통을 산 뒤 다른 상점에 가보았다.
원산 시내에서 가장 큰 상점이라지만 실내가 어둡고 배터리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실수요가 없기 때문에 진열된 상품마저 매우 단조로워 보였다. 길거리로 나오니 개고기를 취급하는 '단고기집'이 눈에 많이 띄었고 '자장면집'도 간혹 보였다.
안내원이 평양에 전화하러 가고 없는 사이 마침 원산항에 정박한 만경봉호(평양~일본간 정기 무역선)가 한 눈에 들어와 카메라에 담았다.
몇 커트를 찍는 사이 행인들이 나를 둘러쌌다. 이중 몇 사람은 선박 정박소 초소의 인민군에게 나를 가리키며 '이상하다'는 식의 제스처를 해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인민군이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오라는 말 같았다. 불안한 기색을 감춘채 그쪽으로 갔더니 "동무는 누구요?"라고 물었다.
호주에서 온 한국계 호주시민이라고 말하자 "한국말을 왜그리 잘 하오?"라고 다그쳤다. "나이 마흔이 넘어 이민갔으니 한국말을 잘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소"라고 반박했다.
인민군은 "이해할 법 하다"며 잠시 침묵하더니 "사진은 왜 찍었소?"라고 본론으로 들어가 다그쳤다. 나도 "북한-일본간 정기 무역선이 만경봉호인줄 세상이 다 아는데 사진찍는 것이 잘못된 일이요?"하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20대 초반의 그 젊은 인민군은 한참 뒤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이해할 법 하다"고 답했다. "안내원 동무는 어디 갔소?" "길 건너 상점에 전화하러 갔소"라고 일문일답하는 사이 안내원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인민군과 안내원 사이에 "도대체 손님을 두고 어디 갔느냐?" "전화하러 갔다" "왜 늘 동행하지 않느냐"며 실랑이가 있었으나 잠시후 별 탈없이 마무리되었다. 사진찍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손님을 놔둔채 볼일보러 간 안내원에 대한 '무책임'을 따지는 듯 보였다. 그사이 행인들은 불구경하듯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원산 시가지를 벗어나자 동해안 절경이 계속됐다. 빗줄기 속에서 차창을 통해 보이는 동해는 유난히 파도가 높아보였다. 한 10분 정도 달리자 그 유명한 원산의 명사십리가 한 눈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곳이지만 찰랑이는 하얀 파도와 길게 뻗은 모래사장을 보다 단번에 명사십리임을 알 수 있었다.
비 때문에 백사장을 밟아보지 못한채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해변을 배경으로 안내원과 사진을 찍었다. 동해안을 따라 시중호(湖)로 들어가는 길은 동해안의 절경과 접하고 있어 내내 동해의 파도에만 눈길이 갔다.
이 바다가 남쪽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왠지 눈물이 나고 가슴이 찡해왔다. 안내원도 내 마음을 읽은듯 "통일의 그날이 하루 빨리 와야될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병태 〈재호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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