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일이다.파리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패션분야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일보다 수입이 아주 괜찮은 편이고 패션과 미술은 비슷한 감각적인 것을 요구하는 탓에 무척 재미있었다. 또 여러나라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음식을 접할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일을 마치고 포토에이전시 매니저와 보그잡지 아트디렉트로 일하는 두 친구에게 한국음식을 소개하고 싶었다. 둘 다 부유한 환경에서 다양한 생활 스타일과 문화적 경험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놓고 있는데 갑자기 관광버스에서 50~60명의 한국단체 관광객이 몰려와 20~30분만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채 나오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 두사람의 친구는 두가지 점에 놀랐다고 한다. 너무도 빨리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점에 우선 놀랐고, 식탁위의 여러 음식(반찬)을 골고루 다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특별히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지 않고, 원하는 것만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이상적인 식사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고 했다.
우리 문화는 어떤 목표가 있을 때 그것만을 생각하고 이뤄야 겠다는 심리탓에 중간과정은 생략하거나 뛰어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기야 어려웠던 시절 한끼 식사는 때우거나 그냥 배를 채우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를 두지 않은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칼과 창(나이프와 포크)를 자르거나 절단하는 약탈자의 몸짓으로 비유한 롤랑 바르트가 생각났다. 젓가락은 음식을 나누기 위해 서양의 도구처럼 자르거나 찌르는 대신 음식을 고르고 뒤집으며 뒤섞는다. 음식물에 절대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재료의 원래 성질과 균열을 찾아 나누어 분리하고 집어서 운반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이프나 포크보다 원시적인 손가락의 기능에 더 가깝지만 그 속에는 자연스럼에 대한 정신성이 깃들어있다. 이 편리하고 각박한 세상에 자르거나 찌르는 나이프와 포크의 단호함보다는 원래의 성질과 균일에 나누어 분리하고 운반하는 젓가락의 자연스런 마음의 여유을 가졌으면 한다.
박종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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