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풍요의 감옥을 벗어나

입력 2002-07-17 14:13:00

평소 많은 사람들로 분주하던 산중에 긴 비로 모처럼 고요한 평화가 왔다. 돌아보니 물질적 풍요를 쫓아 경쟁 속에 살아가는 것보다 마음공부로 정신적 충만감을 추구하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 여겨 출가(出家)하였건만 살다보니 그 또한 쉽지 않아 방심의 흔적이 여기 저기 보인다.

아침 일찍 대밭도 둘러보고 선원 뒤 등산로를 걸으며 그동안 눈앞의 소소한 일들을 챙기느라 마음공부에 소홀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출가 초심(出家 初心)을 되새겨 보고 있다.

내가 사는 동화사에서는 여름이 되면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참 나를 찾아서'라는 수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참석인원이 해마다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참가동기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 참석자의 80%정도가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지만 과연 내가 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몰라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사회 메커니즘이 추구하는 경쟁원리를 좇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대열의 앞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달려왔던 현대인들이 기존의 삶의 방식에 지쳐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찾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요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모 회사의 광고가 직장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이러한 사회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마음의 고요와 평화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끝없는 자기성찰과 반성의 결과물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에 영원한 것은 없다. 어제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이 현재 내가 가진 것 또한 내 것처럼 보일 뿐 영원한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한다. 인간이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알고 집착할 때 고통이 시작된다.

마음의 평화와 고요는 이러한 집착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관조할 수 있을 때 오는 것이다. 미국 철학자 마르쿠제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성찰 없이 물질적 풍요에 얽매여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풍자하여 현대사회를 문명의 이기로 가득찬 풍요로운 감옥으로 비유하였다. 이 여름 풍요의 감옥에서 벗어나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자.

법륜(동화사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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