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얼굴'인 국기(國旗)는 그 나라의 사상.전통.정신.풍습 등을 함축하고 있다. 지난해 뉴욕에서 미증유의 테러참사를 겪은 미국인들이 행사 때마다 성조기(星條旗)를 활용해 애국심에 호소했던 것만 보더라도 국기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과 국민 통합력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우리 선조들의 태극기(太極旗) 사랑도 이에 못지 않았다. 3.1 만세운동 당시 겨레의 가슴 속에도, 이름도 없이 산화한 애국지사.항일독립투사들의 희생적인 삶 속에도, 민족 자존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태극기에 관한 최초의 구체적인 기록은 1882년 8월 임오군란 관계로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했을 때의 일로 나타난다. 특명전권대신 박영효는 고종에게 국기의 필요성을 역설해 만들었다지만, 독립기념관에 소장된 1885년의 태극기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한미수교조약 때 김홍집이 반홍반청의 태극과 그 둘레에 팔도를 상징하는 팔괘를 둘러 사대(事大)에서 해방된 태극기를 탄생시켰다.
▲우리에게 태극기는 그 연원이 그렇듯이 성스러웠고, 언제나 비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일제의 고통을 겪은 우리로서는 소중히 모셔놓고 결의를 다져야 할 대상이었다. 민주화 물결과 더불어선 국민 통합을 강요받는 권위주의의 상징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사정은 크게 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관공서나 학교에서 펄럭이고, 국경일에만 내걸었던 태극기가 일상생활 속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응원도구나 장식품으로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월드컵 열기가 고조되면서 태극 문양을 이용한 각종 패션이나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문구.의류.패션업체들은 신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자동차에 소형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휴대전화나 컴퓨터 화면에 내거는가 하면 태극기 스티커가 안 붙는 데가 없을 정도다.
거리 응원이 새로운 문화로 떠오르면서 태극기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진 데다 월드컵 신화를 계기로 국가에 대한 자부심도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리라.
▲태극기의 근엄함과 성스러움에 대해 교육받은 세대에게는 이 같은 열풍이 다소 당혹스럽고 생경한 모습으로 비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태극기는 더 이상 비장한 분위기를 지니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성숙해졌다. 아래로부터 자발적인 열기가 고조된 태극기에 대한 사랑은 그 사실을 확인케 해주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점진적으로 과거의 권위를 해체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봐야겠지만, 태극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어디 그 변화이기만 할까. 국기 상품의 열기도 국가 위상과 국민의 자긍심에 연결고리를 달고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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