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복잡한 현대미술의 족보

입력 2002-04-30 14:00:00

현대미술의 족보를 외우는 것만큼 고달픈 일도 없다.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초현실주의 개념미술 팝아트 앵포르멜…'.

무슨 주의(主義)와 사조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초보자가 현대미술에 접근하는 데 가장 큰 방해물로 복잡한족보와 난해한 용어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헷갈리고 갈래가 많아서야…".

또 책을 통해 현대미술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 해도 난감하기 짝이 없다. 현대미술의 개론서(상대적으로 쉬운 책이란 뜻이다)로 널리 알려진 '20세기 추상미술의 역사(안나 모진스카 지음)'라는 책을 한번 살펴보자.

서문에 추상미술의 출발을 설명하면서 "모더니즘 정신의 중심에는 모든 미술에 침투한 전위적인 태도가 있었다. 때로 그들은아예 세계를 부정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미학적 완전성과 통일성이라는 서구적인 개념의 자리에 해체, 유동성, 단절이라는 전략을 놓기도 했다"고 적었다.

미술사를 어느 정도 읽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 몇쪽 넘기다가 인내심을 바닥내고 마는 게 보통이다.이런 환경 때문에 초보자가 선뜻 현대미술과 친숙해지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 많은 주의와 사조를 아는 것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길이라고 믿지 않는다. 솔직히 대중이 잘 모르는 황당한(?) 그림을 그려놓고 현학적, 철학적 용어로 이를 포장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용어의 혼동'을 통해 작품 가치를 높이려는'상업적인 책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서구의 작가(혹은 화랑, 평론가)들이 주목을 받기 위해 좋은 의미로는 새로운 주의나 사조를 만들었고, 나쁜 의미로는 새로 이상한짓을 시작했다고나 할까. 시야를 좀 좁혀 우리 주위에 돌아다니는 작품 중 자신의 분명한 이야기(철학)을 담은 작품이 과연 몇점이나 될까.

추상작품을 오랫동안 그려온 한 중견작가의 얘기. "꽤 많은 수의 작가들이 자기가 무얼 그렸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냥 내키는 대로 칠해놓고 설명도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죠. 욕먹을 얘기지만 대중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작가들이 꽤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렇다고 추상미술의 위치나 의의를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추상은 미술의 흐름이고 추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눈으로 작품을 보는 것이 속지 않는 지름길이다. 작가의 명성이나 철학적 설명은 제쳐두고, 확신감을 갖고 자신의 느낌과 직관력으로 작품을 판단하라. 자신의 눈에 비껴나 있다면 그 작품은 자신에게 맞지 않은 작품이라고 보면 옳을 것이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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